“이 고양이는 담벼락 사이에 끼어 있다 구조돼 이름이 ‘벽사이’예요. 저쪽 아기고양이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하수구에 빠져 있다 구해서 ‘홍은이’랍니다.”
서울 마포구의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 건물 2층 진료실. 수십 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반짝였다. 길가에 버려졌거나 목숨을 잃을 위기에서 구조된 개와 고양이들이었다.
카라 상임이사이자 ‘길고양이 전문가’ 전진경 씨(40·여)는 “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살고 싶다고 외치는 소리에 응답하는 게 우리 일”이라며 동물들의 상태를 살폈다. 진료실 한쪽에는 탈수 상태로 병원에 실려 온 국제멸종위기종 1급인 늘보원숭이(슬로로리스) 한 마리가 힘겨운 숨을 내뱉고 있었다. 전 씨는 “멸종위기 동물을 불법 사육하다 유기하는 경우가 최근 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 씨를 비롯한 카라 직원들은 추석에도 병원과 사무실을 지킬 예정이다. 5층짜리 카라 건물에서 치료를 받거나 새 주인을 기다리는 동물은 50여 마리. 임시보호소와 연계된 동물병원까지 합치면 카라가 관리하는 동물은 100마리가 훌쩍 넘는다. 전 씨는 “갓 구조됐거나 생사의 고비를 넘긴 동물들은 꾸준한 치료 및 관리가 필요해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전 씨를 비롯한 카라 직원들에게 이들 동물은 가족이다. 이화여대에서 동물행동생태학 석사 학위를 받은 전 씨를 비롯해 독일과 미국 등에서 학위를 받은 수의사 등 전문가들은 추석을 반납하더라도 동물 가족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전 씨는 “이번 추석에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가족 같은 반려동물과 함께 추석 명절을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다”며 웃었다.
전 씨는 추석 같은 명절에는 휴가철보다 동물을 버리는 행위가 많이 줄었다고 했다. 예전보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좋아져 동물 전용 호텔이나 카페 등에 맡기거나, 함께 귀성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동물 구조 요청은 하루 평균 70∼80건이나 계속되고 있어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카라 측은 밝혔다.
전 씨는 “동물을 돌보며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며 “동물이 행복한 환경이 사람에게도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