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억 카드깡 배후에 ‘뇌물 월급’ 세무 공무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2일 03시 00분


노숙인 명의 유령가맹점 2000곳 차려 44개월간 200억 챙긴 20명 입건
세무서 직원 매달 300만원 받아 단속계획 알려주고 수사 방해도

2011년 3월 서울의 모 세무서에서 일하던 7급 공무원 최모 씨(40)는 지인 소개로 만난 같은 고향 출신 정모 씨(44)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한때 서울 마포구 일대에서 유흥주점을 했다던 정 씨는 최 씨에게 이른바 ‘카드깡’ 단속을 무마해달라며 돈봉투를 건넸다. 매달 300만 원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단속만 잘 막아주면 매번 100만 원을 추가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정 씨는 가짜 카드가맹점을 내세워 세금을 탈루하는 ‘카드깡’ 일당의 총책이었다. 그는 유흥주점 업주들이 유흥주점에 부과되는 최대 38% 수준의 높은 세율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점에 착안해 2010년 2월 공범들을 모아 범행을 시작했다.

일당은 노숙인 등 170명의 명의를 빌려 은행계좌, 사업자등록증, 영업허가증 등을 만들었고 다시 이를 활용해 서울 일대에 실체가 없는 가짜 카드가맹점 1998개를 차렸다.

신용카드회사들이 가맹점 계약 시 사업자등록번호만 조회한다는 점을 악용해 가짜 가맹점을 불려나갔다. 이렇게 마련한 카드결제 단말기는 서울 마포구, 경기 광명시 일대 14개 유흥주점에서 사용됐다. 카드회사와 계약이 돼 있어 정상적인 결제가 가능했지만 가짜 가맹점이라 국세청이 구체적인 거래내역을 추적할 수 없는 단말기였다.

공무원 최 씨는 돈을 받는 대가로 국세청의 단속계획공문서를 통째로 넘겼다. 정 씨의 가짜 가맹점이 고발됐을 때에는 관련 서류를 서고에 방치해 수사를 방해하기도 했다. 거래 사실 확인서도 위조했다.

최 씨는 그 대가로 2년간 8150만 원을 받았다. 그는 같은 세무서에서 일하는 8급 공무원 최모 씨(40)를 정 씨에게 소개했고, 8급 공무원 최 씨도 정 씨에게서 2750만 원을 받았다.

정 씨 일당이 지난해 10월까지 3년 8개월간 카드깡을 통해 탈루한 세금은 약 601억 원(추정치). 해당 기간에 14개 유흥주점이 정 씨의 단말기를 통해 결제한 1582억 원의 38%다.

경찰은 그중 정 씨 일당이 수수료 명목으로 200억 원가량을 받아 챙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및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정 씨 등 일당 2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1일 밝혔다. 7급 공무원 최 씨는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됐고 이외에도 전·현직 세무서 공무원 6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카드깡#뇌물 월급#세무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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