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의정부시 최순화 씨(49·여)는 추석 때 모인 친척들 앞에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올 1학기까지 최 씨의 아들(14·중2)은 오전 8시 20분까지 등교했지만 이달부터 40분 늦춰진 오전 9시까지 등교한다. 아들은 늦은 등교를 반겼지만 최 씨는 걱정이 크다. 그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입실시간이 오전 8시 10분인데 나중에 아이가 수험생이 됐을 때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의 ‘9시 등교제’가 11일로 시행 2주차를 맞았다. 첫 일주일 시행 뒤 맞은 이번 추석 차례상에서도 9시 등교가 화제였다. 본보 취재팀은 수원 성남 고양시 등 경기지역 12곳의 학생 학부모 교사 각 10명에게 9시 등교제의 장단점을 물었다. 학생 학부모 교사별로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보다 많았다. 그러나 일방적인 도입 결정에 대한 비판이나 맞벌이 가정을 위한 대안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 수면시간 늘어났지만 하교는 늦춰져
학생들은 등교가 늦춰지면서 수면시간이 늘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절반 이상이 평소보다 20∼30분가량 잠을 더 자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 곽모 양(15)은 “전에는 학교에서 오전 8시 반부터 9시까지 독서 시간을 진행했는데 학생들이 다 책상에 엎드려서 잠을 잤다”며 “학교에 일찍 나오게 해서 억지로 책을 읽혀도 소용이 없었는데, 차라리 집에서 마음 편히 자고 오는 게 낫더라”고 말했다.
EBS 강의를 시청하는 등 부족한 교과공부에 활용하는 학생도 있었다. 향후 아침시간을 활용한 중고교생 대상 사교육 프로그램이 늘어날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등교시간과 함께 하교시간까지 늦춰진 것에는 대부분 불만이었다. 경기 부천시에 사는 김도훈 군(15)은 “등교가 늦어진 것은 좋은데 하교 시간이 30분 늦춰진 게 불편하다”며 불만을 표했다.
○ 아침식사 챙기지만 맞벌이 부부는 난감
학부모들은 9시 등교제의 장점으로 아이들의 건강이 좋아진다는 점을 꼽았다. 전업주부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면 맞벌이 부모는 부정적이었다. 그렇지만 9시 등교제 폐지보다 계속 운영하면서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경기 양주시에서 중학생 자녀를 키우는 안지영 씨(44·여)는 “제도가 시행된 이후 아이들이 스트레스 없이 기분 좋게 일어나고, 아침식사 할 때도 서두르지 않는다”며 “청소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한 몸과 마음인데, 굳이 학교에 일찍 가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경기 부천시의 중학생 학부모 김기영 씨(50·여)는 “제도의 취지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아침시간’이라고 홍보하던데, 맞벌이 부부에게는 불가능하다”며 “오히려 출근시간과 아이들의 등교시간 간격이 더 벌어져 불편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지각 줄었지만 수험생 피해는 걱정
등교에 여유가 생기면서 교사들의 출결관리 부담은 크게 줄어들었다. 지각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남는 시간을 수업 준비에 활용할 수 있어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경기 안양시의 이성현 교사는 “제도 시행 이후 지각하는 아이들의 수가 급감했다”고 말했다. 다만 다른 지역과 역차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경기 김포시의 한 교사는 “경기지역만 등교시간을 늦추면서 다른 지역 고교생들과의 입시 경쟁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털어놨다.
초중고교의 등교시간을 일괄적으로 맞춘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경기 군포시의 한 교장은 “초중고교가 몰려 있는 지역은 아침에 아이를 데려다 주는 부모들의 차가 한 번에 몰리면서 교통 정체가 심하다”고 말했다.
정진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적으로는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는 게 도움이 된다”면서도 “아울러 아이들에겐 학교생활이 전부여서는 안 되고 일찍 하교한 뒤 방과 후 활동을 하는 게 좋은데, 하교시간이 늦어지면 그럴 여유가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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