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문화융성’에 역행하는 ‘문화 쇠퇴’ 조짐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폐지 위기에 놓인 남동소래아트홀(옛 남동문화예술회관)이 있다. 인천 남동구는 11일 이곳을 구청 팀장 관할 아래 두기 위한 행정기구 설치 조례 개정안을 구의회에 제출했다.
소래아트홀은 2011년 개관한 뒤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 출신의 전문 예술인이 관장을 맡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그러나 올해 6·4지방선거 때 새로 선출된 장석현 남동구청장은 공연 중심의 예술회관이 아닌 여러 예술단체가 상주하는 구민회관 형태로 바꾸려 하고 있다. 남동구는 그동안 아트홀 관장 아래 팀장급 2명을 파견해 왔는데 조례가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팀장이 상관이었던 예술전문직 관장을 부하로 거느리게 된다. 사실상 아트홀을 폐지하겠다는 것. 신임 구청장이 ‘예술 분야를 천대한다’는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채 행정기구 개편 구상을 밀어붙이려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극 인생 50년을 맞아 소래아트홀 무대에 올랐던 연극인 박정자 씨(72)는 아트홀이 위치한 소래포구에서 자랐고 현재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 씨는 “문화는 오랜 기간 투자를 하고 공을 들여야 한다. 공무원이 너무 주도적으로 문화행정을 주무르면 예술을 무덤 속으로 사장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남동구의원도 반발하고 있다. 한 구의원은 “7월 심도 있게 검토한 끝에 남동소래아트홀로 명칭을 변경했는데, 예술회관 기능을 축소하는 조례 개정안을 올려 당혹스럽다”고 전했다. 이런 반대 기류도 있지만 구의원들이 구청장과 같은 새누리당 소속이 다수여서 조례 통과가 유력시된다.
인천문화재단도 문제다. 전국의 대표적인 예술가 레지던시로 자리 잡은 인천 아트플랫폼 관장 A 씨를 직위해제한 게 그렇다. A 씨는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에서 평화미술프로젝트를 주도해 정부로부터 10여억 원의 국비를 끌어오는 성과를 낸 인물. 그러나 재단 대표 등과의 마찰이 생겨 표적 감사를 받고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이 때문에 4년간 진행되던 평화미술프로젝트는 중단됐다. 백령도의 예술가 창작 거주공간 조성사업도 표류하면서 국비를 반환해야 할 상황이다. 아트플랫폼의 한 관계자는 “예술을 통해 남북 긴장 완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행사가 열리지 않아 안타깝다. 그럼에도 재단 내에서 책임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꼬집었다. 이런 척박한 문화풍토 때문에 의욕이 넘치는 전문 예술인들이 인천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떠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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