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치개입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를 마친 후 취재진을 피해 법원을 나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 개입한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서울중앙지법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판결은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우기는 것) 판결'이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 부장판사(45·사법연수원 25기)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을 선고한 재판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법원 내부게시판 코트넷에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김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코트넷에 올린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A4용지 3장 분량의 글에서 "2012년은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해인데 원 전 원장의 계속적인 지시 아래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인 댓글 공작을 했다면 그것은 '정치개입'인 동시에 '선거개입'이라고 말하는 게 옳지 않을까"라며 "(공직선거법 무죄 선고의 근거가 된) 선거개입과 관련이 없는 정치개입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것은 궤변이다"라고 폄하했다.
또 "재판장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에 따라 정말 선거개입 목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지 헛웃음이 나온다"라며 "이 판결은 정의를 위한 판결인가, 아니면 재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심사를 목전에 두고 입신영달을 위해 사심을 담아 쓴 판결인가. 나는 후자라 생각한다"며 1심 재판장인 이범균 부장판사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현 정권은 법치가 아니라 패도정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고군분투한 소수의 양심적 검사들을 모두 제거했다.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을 꿋꿋이 수사했던 전임 검찰총장(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사생활 스캔들을 꼬투리로 축출됐다"며 현 정부를 정면 비판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김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학술 커뮤니티 게시판에 게재한 자신의 글을 삭제했다. 대법원은 이날 코트넷 운영위원회를 소집해 자유게시판에 남아있던 글도 오전 10시경 직권 삭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공직자윤리위원회가 권고한 '다른 법관이 담당한 사건에 관한 학술 목적 등 이외에 공개적 논평 금지' 규정과 법관윤리강령(공정성, 정치적 중립의무)에 위배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김 부장판사의 글을 놓고 판사들 사이에선 의견이 분분했지만 '감정적 표현이 지나쳐 정치권에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고등부장 승진을 위해 판결을 내렸다는 표현은 법관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모욕적 언사"라며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글을 올리고 싶었다면 차라리 정치한 논리로 판결을 반박했어야 하는데 김 부장판사의 글은 마치 '격문'을 읽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부장판사는 2012년 횡성한우 원산지 표기와 관련한 대법원의 판결을 '교조주의에 빠진 판결'이라고 공개 비판했다가 법원장 서면 경고 조치를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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