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가 긴급 대피명령을 내린 뒤 밤에 잠을 자다가도 당장 큰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지 불안감이 높아가고 있습니다.”
전북 익산시가 붕괴 위험이 있다며 재난위험시설로 지정해 11일 긴급 대피명령을 내린 모현동 우남아파트 주민들은 심각한 불안을 호소했다. 당장 뾰족한 대책 없이 대피명령을 발표한 익산시에 대해 “큰일이 날 경우에 대비해 책임을 면하려는 것 아니냐”며 불신을 드러냈다. 긴급 대피명령이 내려진 지 1주일이 되도록 아파트를 떠난 가구는 전무하다. 익산시가 가구당 120만 원씩 지불하기로 한 이주비 신청자가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다. 이 아파트에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은 88가구에 350여 명으로 알려졌다. 전체 103가구 가운데 15가구는 대피명령 발동 이전에 아파트를 떠났다.
익산시가 재난기본법에 따라 긴급 대피명령을 내렸지만 이주를 강제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재난기본법에는 즉시 대피하지 않을 경우 경찰을 통해 강제 대피를 실시하거나 2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사유재산인 데다 당장 갈 곳이 없는 주민들을 강제로 내쫓기도 어렵다.
시는 우선 가구당 120만 원의 이주비를 지급하고 재난기금에서 3000만 원 융자와 금융기관 추가 융자를 알선할 방침이다. 또 인근 부영아파트 등 미분양 아파트를 파악해 이들의 입주를 유도할 계획이다. 그러나 입주민들은 이 같은 익산시의 대책에 만족을 못하고 있다. 우남아파트 시세가 5000만 원 선인 데 비해 익산시가 알선한 아파트는 전세가만 1억5000만 원이 넘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03가구 중 60% 이상이 이미 담보대출을 받아 시가 알선하는 융자의 기준에 맞을지 의구심을 나타내는 주민들도 있다.
아파트 바닥이나 담벼락 등 외관에 사람 손바닥이 들어갈 정도의 틈이 벌어져 있는 등 노후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아파트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철로가 있어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진동이 그대로 느껴지고 아이들이 뛰어도 바닥 흔들림이 감지된다. 주민들은 창문이 뒤틀려 열리지 않는 곳이 많고 건립 초기부터 지하실에 물이 찼다고 전했다. 시커먼 곰팡이가 낀 건물 모서리는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갔고 벽면 곳곳에도 실금이 가 있었다.
모현동 우남아파트는 충남의 한 건설업체가 1991년 8월 사업승인을 얻어 1992년 10월 입주를 시작했다. 1개동에 10∼15층으로 82.65∼135.54m² 103가구다. 주민들은 입주 직후부터 부실시공이라며 건설사에 항의를 계속하다 입주 10년 차에 실시한 안전진단에서 C등급과 D등급을 받았다. 주민들은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다시 10년이 걸렸다. 재판 과정에서 실시한 안전진단 결과 D등급, E등급이 나왔다. 소송 결과 시공사로부터 7억4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받았지만 그동안 소송 비용으로 많은 돈이 들어갔고 남은 돈은 재건축이나 보수·보강 공사를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주민들 간에 의견도 엇갈린다. 일부 주민은 재건축을 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또 다른 주민들은 보수·보강을 거쳐 거주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재건축 의견에 대해서도 이 아파트가 용적률 제한에 걸려 재건축이 가능할지 의문을 제기하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는 현재 상태로는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주민은 건설사 손해배상금으로 전체 주민의 동의를 얻어 보수·보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붕괴 위험이 높아 불안감에 휩싸인 상황에서 시의 후속 대책이 늦어지는 데다 주민 간 의견마저 모아지지 않아 모현동 우남아파트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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