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동서남북]옛 도지사 관사 성급한 처분 재고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9일 03시 00분


강정훈·부산경남본부장
강정훈·부산경남본부장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역사는 없다고 했는데….”

경남도가 옛 도지사 관사(官舍)의 처분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도시계획 전문가인 허정도 창원대 겸임교수(62)는 “성급한 결정이므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도지사는 최근 “방문객이 적은 데 비해 관리비는 많이 든다”며 ‘도민의 집’으로 쓰이는 관사 매각 방침을 밝혔다. 30년 된 건물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처지에 놓인 것이다. 창원시 의창구 외동반림로의 지하 1층, 지상 2층, 총면적 829m²인 건물과 주변 녹지 9800m²다.

도는 1종 전용주거지역인 이곳을 일반 또는 준주거지역으로 바꾸려 한다. 건폐율과 용적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도시계획 변경 담당인 창원시는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과의 형평성, 도심 녹지와 경관 훼손을 걱정한 때문이다. 그러나 홍 지사 업무 스타일로 보면 매각을 추진할 확률이 높다.

관사 처분에 따른 득실은 꼼꼼히 따져야 한다. 시설물에 연륜이 붙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부수는 데는 몇 초밖에 안 걸린다. 보통 건물은 돈만 있으면 짓는다. 그러나 돈으로만 갖기 어려운 시설도 많다.

관사 방문객은 연간 2만 명, 유지비는 1억 원 안팎이다. 문화재나 유적지 하나 관리하는 데도 비슷한 비용이 든다. 그렇다고 헐거나 팔지는 않는다. 타산만 따진다면 하위권을 맴도는 경남도민프로축구단을 비롯해 정비해야 할 조직이 한둘이겠는가. 진주의료원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두려는 경남도 서부청사도 예산 측면에서만 본다면 되로 받고 말로 주는 격이다.

손님도 제법 온다. 그들은 각종 자료와 집기류 등을 둘러보며 ‘경남의 역사’를 익힌다.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다. 회의실도 500회 가까이 사용했다. 경남도가 내용물을 채운 뒤 교육당국, 시군, 관광회사 등과 협조체제를 갖춘다면 방문객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상징성도 있다. 이 관사는 임명직과 선출직 도지사 8명이 숙소와 제2집무실로 썼다.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이른바 ‘지방청와대’로 지어 권위주의의 상징이지만 그 역시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다. 무엇보다 도지사 관사는 숱한 논란을 거쳐 2009년 ‘도민의 품’에 안겼다. 사실상 도민의 시설인 셈이다. 녹지공간은 도심 속 휴식처로 손색이 없다. 학생 소풍 장소로 그만이다. 손질을 하면 회의장, 결혼식장으로도 괜찮다. 전시 공연 등 문화공간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창원대의 ‘경남학’을 이곳에서 강의하는 것은 또 어떤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규정한 ‘경남도 기록물 관리관’으로 활용해도 된다. 역대 도지사 관련 자료, 연설문, 백서, 공문, 집기 등을 이곳에 전시하면 금상첨화다. 모름지기 역사가 살아 숨쉬는 아카이브, 문화 예술을 나누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18일 투자 유치 등을 위해 미국 출장길에 오른 홍 지사의 업무 집중력과 속도는 특출하다. 그가 좋아하는 골프처럼 행정 역시 속도, 거리(규모) 못지않게 방향성이 중요하다. 관사도 그런 연장선에서 다시 살펴야 한다. 유구한 역사에 비추면 홍 지사의 재임 기간은 ‘순간’이다. 그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내일은 역사가 된다.

강정훈·부산경남본부장 manman@donga.com
#옛 도지사 관사#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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