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롯데백화점-번개시장 상인 “우리는 이웃사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5일 03시 00분


백화점 조직 ‘지역상생연구회’
영세상인 가게 보수-친절교육 나서… 상인들 “시장 분위기 젊어졌어요”

23일 대구 중구 번개시장 심순남 할머니(왼쪽에서 네 번째)의 식당에서 심 할머니와 롯데백화점 대구점 직원들이 보수공사를 마무리한 후 재개업을 축하하고 있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23일 대구 중구 번개시장 심순남 할머니(왼쪽에서 네 번째)의 식당에서 심 할머니와 롯데백화점 대구점 직원들이 보수공사를 마무리한 후 재개업을 축하하고 있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23일 오후 대구 중구 태평로 번개시장. 닭요리점을 운영하는 심순남 할머니(76)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심 할머니는 손님과 상인에게 시루떡을 나눠주며 허리를 크게 굽혀 인사를 했다. 그는 “다시 개업한 기분에 마음이 설렌다. 30년 넘게 장사를 했지만 오늘이 가장 기쁜 날”이라며 좋아했다.

심 할머니의 수십 년 된 낡은 가게는 이날 새 단장을 해 문을 열었다. 인근 롯데백화점 대구점 직원 10여 명이 이틀 동안 보수공사를 벌였다. 색이 바랜 벽지는 밝은 것으로 바꾸고 물이 새는 지붕도 고쳤다. 의자와 식탁, 주방 식기 등은 모두 새것으로 교체했다. 직원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TV와 냉장고를 선물했다. 식당 간판과 메뉴판은 백화점 분위기가 나도록 디자인해 바꿔 달았다. 어둡고 어지러웠던 15m² 공간은 백화점 직원들의 손길에 완전히 달라졌다. 이웃 상인은 “이제 시장 명물이 되겠소. 덩달아 우리도 장사가 잘될 것 같네”라며 웃었다. 백화점 식품팀 김자연 씨(33·여)는 “깨끗하게 바뀐 가게를 만지며 행복해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뜻 깊은 행사에 참여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장사하며 외아들을 키웠던 심 할머니는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손님 발길이 계속 줄어 가게를 포기할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바뀔 줄 몰랐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기대감에 힘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

심 할머니의 가게 보수는 롯데백화점 대구점과 번개시장의 상생 교류협약에 따른 것이다. 백화점이 조직한 ‘지역상생연구회’가 최근 시장 환경을 개선하고 어려운 형편의 상인을 돕는 방안을 고민하다 이번에 처음 마련했다. 연말까지 세 곳을 추가 선정해 2400여만 원을 들여 보수해줄 계획이다. 이 가게들에는 ‘번개시장 러브스토어’란 별도의 간판도 달아준다. 단골이 늘어 시장 대표 가게로 번창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백화점 직원이 수시로 찾아가 친절 교육과 홍보도 따로 해줄 예정이다. 송영근 지원팀장은 “지원 가게뿐 아니라 시장 전체가 흥겨운 분위기가 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상하겠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대구점과 번개시장은 20여 m 거리에 있지만 이용 고객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불편하게 느꼈다. 그러나 2012년 9월 협약을 맺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상인들의 무료 건강검진과 예식장 무료 대여, 자녀 장학금 지원, 백화점 주차장 개방, 사무용품 지원 등을 펼쳤다. 번개시장에 가서 물건을 구입하면 롯데백화점과 시장 홍보 캐릭터(일출이)가 그려진 쇼핑백에 담아준다. 최근에는 시장용 쇼핑카트도 등장했다. 백화점 직원들이 퇴근길 시장에서 장을 보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 됐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두 곳은 이제 편견을 허물고 좋은 이웃사촌이 됐다. 매출이 같이 오르고 침체된 상권도 점차 되살아나고 있다. 봉사단도 공동 구성해 홀몸노인과 저소득 가정에 도시락과 밑반찬을 배달하는 봉사도 한다. 화은경 번개시장 발전을 위한 상인회장(49)은 “백화점과 손잡고 난 후 시장 분위기가 젊게 바뀌고 이미지 개선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고 말했다.

민광기 롯데백화점 대구지역장(58)은 “전통시장과 함께하는 백화점 이미지가 경영에 큰 도움이 된다. 전국적 상생 모델이 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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