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6일 제60회 백제문화제가 충남 부여와 공주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에 부여를 찾은 관광객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부여의 상징으로 삼천궁녀 전설을 지닌 낙화암을 비롯해 호국 설화가 담긴 조룡대, 왕이 행차하면 스스로 뜨거워진다는 자온대 등 대표적인 백제유적 3곳의 경관이 최근 흉물스럽게 변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백마강(금강의 부여읍 구간)의 유람선 업체가 올해 2월 강변에 있는 이들 유적의 바위에 음각으로 새져진 한자 글씨(落花巖, 釣龍臺, 自溫臺)에 붉은색 페인트를 덧칠하면서 시작됐다. 이 업체는 자신들의 행위가 문제가 되자 부여군에 “유람선 관광객이 유적을 알아보기 쉽도록 덧칠을 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채색이 선혈(鮮血)같이 너무 붉은 색으로 이뤄져 섬뜩함마저 주는 데다 일부 글씨의 덧칠은 수채물감이 번지듯 음각 부분을 벗어나 너저분한 느낌을 준다는 게 대다수 관광객의 반응이었다. 페인트를 덧칠하면서 유적의 손상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화재청 측은 “채색 재료를 분석한 결과 유성 페인트로 밝혀졌다. 일단 이를 제거한 뒤 천연도료를 다시 칠할지 음각 상태로 그대로 둘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음각 글씨는 처음부터 붉은색으로 칠해졌을 가능성이 있어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진 않을 수도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들 유적의 글씨는 조선조 유학자 송시열의 글씨를 서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유적의 사례를 볼 때 당시 ‘주(朱)’라는 도료와 칠 재료를 혼합해 칠하는(주칠) 도장법을 썼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번 유람선 업체의 페인트칠은 차원이 다르다. 상업적인 목적인 데다 문화재 당국의 허가조차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여군은 7개월이 지나도록 이런 사실을 인지조차 못해 문화재 관리의 허술함이 드러났다. 부여군은 한 출향 인사의 제보로 언론에 문제가 제기된 이달 하순에야 부랴부랴 진상 파악에 나섰다. 부여군 관계자는 “이들 유적이 대로변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백마강 유람선 관광을 최고의 치적 가운데 하나로 자랑하는 부여군으로선 군색한 변병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용우 부여군수는 ‘백마강 르네상스’를 군정 슬로건으로 내걸어 왔고 현장 확인행정을 위해 군수 전용차량을 승용차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바꿨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이번 일이 이 군수의 부실한 문화재 행정의 현주소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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