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TV 채널에 맛집 소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외주 제작사 김모 대표(33)는 식당 섭외보다 기부금 모금에 열정을 쏟았다. 그는 프로그램 출연을 희망하는 식당 주인에게 직접 전화해 "제작비는 필요 없으니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도서를 기부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김 씨는 프로그램 저작료 명목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렸지만 몇몇 업주들이 퇴짜를 놓자 잔꾀를 낸 거였다. '맛집 촬영의 대가'를 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던 업주들이 선행을 베풀어달라는 요청에는 흔쾌히 지갑을 열었던 것.
김 씨가 2012년 5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이 같은 방식으로 음식점 주인들에게 받아 챙긴 돈은 무려 9억4000여만 원이나 됐다. 총 478명의 업주로부터 매일 한번 꼴로 98만~320만 원을 뜯어냈다. 이 중 도서 구입에 사용된 돈은 기부금의 8%인 8100만 원이었고 그나마 1700원짜리 재고서적이 가장 비싼 책이었다. 나머지 돈은 김 씨의 차량 리스료, 아파트 자금, 케이블방송 관계자에게 줄 뇌물 등으로 사용됐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황병하)는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 씨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방송 전문직 종사자인 김 씨가 도서기부금을 빙자해 출연장소를 섭외한 것은 고도의 지능범에 해당한다"고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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