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써준 詩로 금상… 선배가 대신한 발표로 입상… 가짜 121시간 봉사賞…
교사 2명에 수천만원 주고 경력 조작…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한의대 입학
검거된 목동엄마 “강남은 더하다”
“너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 나머지는 엄마가 다 알아서 할게.”
지난해 K대 한의예과에 입학한 손모 씨(20)는 고교 2학년이던 2010년 입학사정관 전형 입시 준비를 시작하면서 어머니 이모 씨(49·대학 강사)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입학사정관 전형 입시는 시험 성적보다 학생의 대외 활동이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 어떻게 엄마가 알아서 할까. 자녀 교육에 극성인 ‘목동 엄마’(서울 양천구 목동지역 학부모) 이 씨는 돈으로 대외 경력을 사서 약속을 지켰지만 결국엔 아들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 되고 말았다.
8일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따르면 손 씨가 K대에 입학할 당시 제출한 수상이나 봉사활동 경력 중 최소 5건이 허위로 드러났다. 어머니 이 씨는 딸의 입시 상담을 해 줬던 J여고 민모 교사(57·구속)에게 “아들 입시 지도도 해 달라”고 부탁하며 경력 만들기에 들어갔다. 손 씨는 2010년 10월 한글날 기념 전국 백일장대회에 민 교사가 써 준 시(詩) 4편을 가지고 들어갔다. 경찰 관계자는 “민 교사가 지은 시를 어머니가 원고지에 옮겨 적은 것”이라며 “당시 제출한 시의 필적은 어머니 글씨체”라고 말했다. 이걸로 아들은 금상을 받았다.
발표자 바꿔치기도 두 차례나 있었다. 이 씨는 아들이 다니던 서울 양천구 K고 김모 교사(55)를 끌어들였다. 김 교사는 2010년 11월 ‘G20 국가들의 기후변화 청소년 발표대회’가 열리자 전해 같은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K고 선배 김모 씨(21)에게 “네가 손○○이라고 말하고 발표하라”고 시켰다. 이 대회 참가자들은 모두 영어로 발표했다. 손 씨는 참석하지도 않은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다음 해 열린 토론대회에서도 김 교사와 K고 홍모 교사(46) 등은 다른 학생이 대신 발표하도록 해 손 씨에게 상을 건넸다.
가짜 서류도 일사천리로 만들어 냈다. 손 씨는 민 교사 소개로 서울 양천구 H병원에서 2009, 2010년 121시간에 이르는 봉사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발급받았다. 2010년 1월에는 “10일 동안 북유럽을 다녀왔다”며 ‘북유럽의 문화적 특성 체험’이라는 보고서를 학교에 냈지만 실제론 중학교 때 가족 여행으로 다녀왔을 뿐이었다. 손 씨는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2012년 S대 생명과학계열에, 지난해엔 K대 한의예과에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입학했다. 당시 K대 한의예과 입학사정관 전형 경쟁률은 17.6 대 1이었다. K대 관계자는 “최종 재판 결과가 나오면 손 씨의 합격 취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를 써 준 민 교사는 경찰에 “학부모에게서 5500만 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다만 어머니 이 씨는 “2500만 원을 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리 발표를 시킨 김 교사는 당초 “1000만 원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손 씨와 어머니 이 씨, 교사 2명 등 4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민 교사는 다른 학교 시험지 유출 사건에 연루돼 이미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어머니 이 씨는 대리 발표 등 혐의를 시인하면서도 “서울 강남에 가면 나보다 더한 엄마들이 적지 않다. 왜 나한테만 그러느냐”며 억울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대학도 꼼꼼히 확인만 해도 거를 수 있는 허위 서류에 속았다”며 “이번 수사로 확인된 입학사정관 제도의 문제점을 교육부와 해당 대학에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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