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가출팸’을 비롯한 가출 청소년의 숨겨진 삶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시한폭탄’이다. 그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 “넌아직 생일 안 지났으니 교도소는 안 가. 보호관찰이나 쉼터 위탁처분 정도 받겠다. 난 이번에 재판받으면 소년원 갈 거야. 재판 ‘제낄’까봐. 그럼 다음 재판기일 잡힐 때까지 일주일 벌 수 있으니 그동안 실컷 놀 수도 있고.”
“애들 말 들어보니 소년원이 생각보다 재미있대.”
어렵게 섭외해 만난 두 아이가 떡볶이 접시를 앞에 놓고 쉴 새 없이 재잘거린다. 짙은 화장으로도 감출 수 없는 앳되고 천진난만한 표정의 그들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곤 믿기지 않는 거침없는 단어들. 재판기일, 소년원, 위탁처분….
대화 속 ‘생일이 안 지난’ 아이 연주(가명· 14)는 지난 4월 학교를 중퇴한 뒤 가출했다. 동급생을 폭행하고 담배를 피우다 ‘강제전학’ 조치를 당하자 “쪽팔려서 학교에 안 나갔다”고 했다. 연주는 현재 주거침입과 집단폭행, 절도와 사기로 재판을 받는다. 놀고 싶어 ‘재판을 제낄까’ 고민 중인 혜영(가명·16)에겐 닷새 사이 두 번의 재판이 기다린다. 폭행과 여러 건의 사기, 공갈, 절도 외에 가장 심각한 범죄 혐의는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혜영은 “후배(가출 청소년)가 제 발로 찾아와 성매매를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시켰는데 경찰에 가서 딴소리를 하며 배신을 때렸다”고 분개했다.
성폭행, 강제 성매매, 납치, 집단폭행, 살해, 시신훼손, 사체유기, 암매장에 이르기까지 5대 강력범죄 중 방화를 제외한 모든 범죄가 한 소녀를 상대로 저질러졌다. 가해자 중 또래 16세 여학생 3명이 포함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일명 ‘김해 여고생 살해사건’이다.
가해자인 여학생들은 그에 앞서 대전에서도 40대 남성 살해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고 여린 사춘기 소녀들의 얼굴 뒤에 감춰진 잔혹행위에 세인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라며 경악했다. 하지만 가출 청소년과 부대끼며 그들이 처한 환경과 특성을 꿰뚫는 현장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라 경고했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여성가족부 추산에 따르면, 현재 학교와 집의 울타리를 벗어나 거리를 떠도는 가출 청소년은 20만 명을 헤아린다. 그중 가출 청소년 보호시설인 쉼터에서 보호받는 아이들은 한 곳당 일평균 10명 안팎. 전국 109개 쉼터에 머무는 아이들을 다 합치면 1000여 명, 쉼터 수용능력 최대치로 잡아도 1500명에 지나지 않는다. 대다수 가출 청소년이 제도 속으로 편입되지 못하고 거리를 전전하는 것이다.
가출 청소년이 부모 손길과 보살핌을 벗어나 거리에서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먹고사는 것’이다. 집 나온 지 1년 넘는 보라(가명·17)는 가출 초기 배가 고파 대형 마트나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쳤다. 절도 행각은 ‘먹을 것’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로 갈수록 대담해졌다. 보라는 “마음 맞는 친구끼리 두세 명 뭉쳐 다니면서 훔친다. 계획 세우고 그런 거 없다. 그냥 여럿 모여 있다 한 아이가 ‘갈래?’ 하면 가는 거다. 어떤 물건이 필요하기보단 닥치는 대로 집어서 나온다”고 했다.
연주는 “처음엔 배가 고프니까 편의점에서 김밥이나 빵같이 먹는 걸 주로 훔쳤다. 한 명이 카운터 직원 붙잡고 물건을 사는 척하면서 시간을 ‘뽀개고’ 있으면 나머지 애들이 물건을 훔쳐 달아났다. 예전엔 ‘삥(금품 갈취)’도 뜯었다”고 했다.
오후 8시 넘은 시각, 부평역 주변과 더불어 인천 지역 가출 청소년 집결지로 꼽히는 부평문화의거리를 찾았다. 일찌감치 문 닫아 어두컴컴한 재래시장의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가자 눈부신 조명이 대낮처럼 불 밝힌 번화한 거리가 나타났다. 초입엔 두 동의 천막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가림막이 쳐진 오른쪽 천막에서 떠들썩한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매주 목요일 이곳에서 가출 청소년을 위한 아웃리치(Outreach·현장구호활동)를 벌이는 ‘한울타리’ 쉼터가 마련한 일명 ‘거리 밥차’였다. 출입구의 갈라진 틈새로 아이 예닐곱 명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성태봉 쉼터 소장은 “거리에서 만난 가출 청소년 중 가장 오래 밥을 굶은 아이가 ‘사흘’을 굶었다. 그 이상은 굶지 않고 끼니를 이어갈 수 있도록 최소한 일주일에 2회 밥차를 운영하고 싶지만 따로 지원되는 예산이 없어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성 소장에 따르면 매회 평균 50~70명이 이곳을 찾는다.
“쉼터가 집보다 즐겁다”
밥차 옆 천막에선 팔찌와 비누, 수세미 등을 팔고 있었다. 천연재료를 사용해 만든 각양각색의 수제 비누를 몇 개 골라 팔찌와 함께 구입하는 동안 말문을 튼 판매원은 가출 소녀 민지(가명·14)였다. 민지는 “비누공예를 배운 지 4개월 됐다. 여기 있는 물건은 모두 쉼터 선생님과 친구들이 함께 만든 것”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가족과의 갈등으로 지난해 12월 집을 나와 쉼터로 간 민지는 이후 가정으로 돌아갔다 또다시 가출했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계모와 함께 살게 된 민지는 모진 구박과 차별을 견뎌야 했다. 계모는 자신이 데리고 온 두 자식만 감싸고돌며 민지를 학대했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딸의 보호막이 돼주지 못했다.
민지는 “새엄마가 재산이 좀 있어서 아빠가 눈치를 많이 봤다. 집에 있을 땐 웃을 일이 없었고 우울했다. 쉼터가 집보다 밥도 맛있고 즐겁다”고 했다. 첫 가출 때 가끔씩 쉼터를 찾아와 용돈을 쥐여주던 아버지와는 두 번째 가출 이후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밤 10시가 가까워오자 민지는 서둘러 가방을 챙겨 천막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공예 담당 선생님’ 조선미 씨(쉼터 소속)는 “근로기준법상 청소년은 야간근로(밤 10시~새벽 6시)가 금지돼 있어 먼저 쉼터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쉼터에 머무는 아이들의 경우 공예시간에 참여해 비누나 팔찌 등을 만들면 개당 200원씩 용돈을 받는다. 아이들이 한 번에 벌 수 있는 돈은 보통 2000~4000원. 판매 아르바이트에 자원할 경우 시간당 5000원의 보수를 준다. 조씨는 “공예품 만들기와 판매 아르바이트는 원하는 아이들만 하게 하는데 민지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가출 뒤에도 학교를 꾸준히 다녀 담임이 가출한지도 모를 정도였다. 지금 중학교 1학년인데 착하고 성실하다”고 칭찬했다.
‘가출팸’ 통해 범죄 정보 얻어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미성년자가 집을 떠나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전무한 실정이다. 아르바이트에 ‘부모동의서’가 필요할 뿐 아니라 17세 이하 미성년자는 받아주는 곳이 드물기 때문. 아버지와 이혼한 뒤 홀로 동생과 자신을 키우며 고생하는 엄마에게 “돈 많이 벌어서 오겠다”고 약속하고 집을 나선 후 가출 청소년이 된 주영(가명·16)이는 “청소년 알바 같은 거 말고 진짜 어른들처럼 제대로 돈 벌고 싶다. 고깃집 같은 데서 일하고 싶은데 어리고 경험이 없다며 안 써준다. 엄마와의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민지처럼 쉼터를 통해 그나마 몇 푼 안 되는 용돈을 벌 수 있는 가출 청소년은 극소수다. 대부분 주영이처럼 돈을 벌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다. 지난해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과제로 발표된 ‘가출 청소년 보호를 위한 지역사회 안전망 강화 방안 연구(경기대 청소년학과 최순종 교수 외 2명)’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가출 청소년 200명의 32.6%가 ‘가출기간 가장 어려운 시기’로 ‘용돈이 없을 때’를 꼽았다. 이어 29.3%가 ‘잠잘 곳이 없을 때’, 21.5%가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할 때’라고 응답했다.
인천 연수동에 위치한 쉼터 ‘꿈꾸는별’의 이정택 팀장은 “‘레미제라블’은 장발장이 배가 고파 빵을 훔친 데서 시작된다. 빈손으로 가출하는 아이들한텐 얼마 못 가 분명히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가출 청소년이 집을 나온 직후 가장 손쉽게 배고픔을 해결하는 방법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계산하지 않은 채 도망가는 ‘먹튀’다.
먹튀로 시작된 생계형 범죄는 ‘폰팔이’(힘없는 학생들에게 휴대전화를 강매하는 행위)로 이어지는데 최근 가출 청소년 사이에 가장 흔한 범죄가 됐다. 이 팀장은 “폰팔이로 현재 경찰 조사를 받거나 재판 중인 우리 아이가 많다”고 했다. 당장 잠잘 곳,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절박해진 아이들은 자신들을 원하는 수요가 있는 곳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가출과 동시에 범죄의 길로 빠져들어 죄의식에 무감각해진 아이들, 특히 여자아이들은 노래방 도우미와 성매매에 빠져드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단 한 번으로 손에 쥘 수 있는 돈의 액수가 소소한 절도와 비교할 수 없고, 맘만 먹으면 자신에게 언제든 쉽게 지갑을 열어줄 성인 남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널렸기 때문이다.
성매매를 위해 가출 소녀들이 최근 자주 이용하는 것이 ‘즐톡(채팅 애플리케이션)’이다.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 흔적으로 남지 않아 범죄행위가 발각될 위험성이 적기 때문이다. 인천의 한 경찰서 청소년담당 경찰관은 “얼마 전 비슷한 성매매 사기사건이 있었다. 16세 여자아이가 즐톡을 통해 ‘조건 만남’으로 남자를 모텔로 유인해 선불을 받은 뒤 남자가 욕실에 있는 새 도망쳤다. 휴대전화에 흔적이 남지 않아 성매수를 시도한 남자는 결국 못 잡았다. 여자아이는 세 살 많은 가출 소년의 폭행과 강요에 의해 성매매에 가담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주로 14~19세 가출 청소년 가운데 ‘가출팸(가출과 패밀리의 줄임말)’이 범죄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출팸엔 18~19세, 혹은 그보다 나이가 많은 리더가 있고 리더를 정점으로 무리 내 서열화가 이뤄진다. 리더는 범죄를 기획하고 나머지 아이가 각자 역할분담을 통해 범행을 실행에 옮긴다. 그는 “형사미성년자(14세 미만)를 포함해 청소년 범죄를 성인처럼 처음부터 엄격하게 처벌하지 않아 가출 청소년의 범죄가 점점 상습화, 습관화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현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가출 청소년의 집단화, 조직화도 위험수위에 다다랐다. 혼자일 때보다 가출팸을 이룰 때 쉽게 군중심리에 편승하고 죄의식이 상쇄되면서 갈수록 대담한 범죄에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가출팸 안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집단폭행 수위도 심각성을 더한다. 2010년 6월 10대 가출 청소년 5명이 친구를 상대로 집단구타를 하던 도중 피해자가 숨지자 ‘몸에서 피를 빼면 무게가 줄어든다’는 영화 대사를 떠올리고 신체 일부를 훼손한 뒤 시신을 한강에 버린 사건이 밝혀져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최근 일어난 김해 여고생 살해사건 역시 가해자들이 수시로 피해자를 집단폭행하는 등 가혹행위를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가출 청소년의 집단화, 조직화가 가능한 이유는 SNS의 영향이 크다. 채팅 기능이 있는 메신저를 이용해 가출 청소년끼리 24시간 실시간 연결되므로 쉽게 가출팸을 형성하고 팸과 팸을 옮겨 다니는 일도 빈번히 이뤄진다. 혜민(가명·16)은 2개의 가출팸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다 각각의 집단에서 범죄에 연루돼 집단성폭행의 피해자이자 사기사건 가해자가 되어 현재 재판을 받는다.
가출팸의 또 다른 심각성은 또래끼리 부정적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여러 가출팸을 전전하면 모르던 범죄 정보를 다양하게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택 팀장은 “임신 중인 상태로 거리 생활을 하며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아이가 있어 간신히 설득해 미혼모 시설에 입소하기로 약속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시설에 안 들어가겠다’고 하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언니(가출팸)가 거기 가면 흡연과 외출도 못하고 강제로 프로그램에 응해야 된다고 하더라’고 했다. 아무리 잘못된 정보라고 해도 같은 처지의 아이들 말이 쉼터 선생님 말보다 약발이 더 잘 먹힌다”며 안타까워했다. 가출 청소년은 ‘심리적 빈곤자’
가출팸은 남녀 혼성 그룹이 많다. 하지만 일시 쉼터를 제외하고 단기·중장기 쉼터는 남녀를 구분해 운영된다. 그 때문에 가출팸 아이들은 단기·중장기 쉼터 입소를 거부한다. 남자 또는 여자 친구가 있는 아이들 역시 입소를 꺼린다. 거리에서 보살펴주는 사람 하나 없이 서로 의지해온 아이들이 쉼터에 들어가기 위해 떨어지려고는 하지 않기 때문.
현재 가출팸 5가구 15명의 아이를 수시로 찾아가 보살피는 이정택 팀장은 “가출팸 아이를 쉼터로 끌어들이려면 운영방식을 바꿔야 한다. 또한 가출 청소년은 쉼터 선생님에게조차 마음을 잘 열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어도 병원에 데려가기가 쉽지 않다. 어렵게 설득해 치료를 시작한 아이들을 ‘7일 이내 보호’라는 일시 쉼터 기준 때문에 내보내야 할 땐 너무 답답하다. 사례별로 예외가 허용되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5월 서울 강남에서 의정부시이동청소년쉼터로 자리를 옮긴 전종수 소장은 “매일 저녁 이동쉼터 버스를 몰고 의정부 등 경기북부지역으로 아웃리치를 나간다. 최근 지역 숙박업소들이 가출 청소년을 상대로 ‘돈은 나중에 벌어서 갚아라’며 외상으로 숙소를 내준다는 정보를 입수해 현황을 파악 중이다. 아이들이 방값을 갚기 위해 위험천만한 범죄로 빠져들게 되는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취재 마지막 날 일주일 내내 드나들던 지하철 부평역사에서 3명의 가출 청소년을 만났다. 흡연구역 벤치에 앉아 한 개비의 담배를 돌려가며 피우는 소녀들의 나이는 기껏해야 15~16세. 그중 한 아이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발라 애써 나이를 감추려 했지만 언뜻언뜻 얼굴을 스치는 불안한 표정까지 감춰지진 않았다. 긴 인조 속눈썹으로 반쯤 가려진 커다란 눈망울에선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묻어났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성태봉 소장은 “우리 사회는 가출 청소년을 ‘문제 있는 아이들’로만 보고 사회와 차단하기에 급급하다. 시각을 바꿔 가출 청소년을 국가 미래 자원으로 보고 사회안전망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투자하지 않으면 장차 성인이 된 뒤에도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그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엄청날 것이다. 해마다 1만 명이 넘는 가출 청소년이 성인에 편입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는 “사람은 심리적 자유를 느낄 때 행복하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압박과 부모의 지나친 간섭, 입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지난해 신문에서 ‘부모와의 소통 부재가 가출의 주요 원인’이라는 기사를 봤다. 학교와 가정 어디에도 억눌린 감정을 해소할 곳이 없다보니 아이들이 거리로 뛰쳐나간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경제적 빈곤, 가족 갈등, 가정해체 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심리적 빈곤자’로 보고 정부가 나서 복지 차원에서 심리치료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가출 청소년을 전담할 심리치료사 등 전문가 양성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문제 핵심은 거리에… 현장에서 답 찾아야”▼
[Interview] 경기대 청소년학과 최순종 교수
경기대 청소년학과 최순종 교수(사진)는 지난해 ‘가출 청소년 보호를 위한 지역사회 안전망 강화 방안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하는 등 오랫동안 가출 청소년 문제와 해법을 연구했다. 최 교수는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가 주관한 가출 청소년 관련 비공개 간담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그를 만나 가출 청소년 문제의 해법을 들었다.
-김해 여고생 살해사건을 계기로 여론이 들끓었다. 범죄자 신상공개와 사형제도 부활을 피력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악마 같다. 똑같이 당해야 한다”는 섬뜩한 주장도 쏟아졌다.
“가출 청소년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독일 사회학자 헬무트 쉘스키는 68학생운동으로 나라가 한창 혼란할 때 한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젊은이들이 왜 사회를 어지럽힌다고 생각하느냐?’ 그의 대답은 딱 한마디였다. ‘사회가 젊은이들을 어지럽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말에 모든 의미가 함축돼 있다. 가출 청소년 문제는 결국 사회문제다. 우리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을 보호, 지원해야 한다. 문제 해법의 출발점은 가출 청소년이 사회를 어지럽히는 게 아니라 사회가 청소년을 가출하도록 만드는 면에서 찾아야 한다.”
-8월 말 국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나.
“입법심의관을 비롯해 몇몇 의원실에서도 참석하고 현장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최근 가출 청소년 문제가 심각한 수준임을 인식하고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다방면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논의의 초점은 (가출)청소년쉼터에 입소한 아이들보다 10배 이상 많은 거리의 청소년을 어떻게 지원할지에 맞춰졌다.”
지난해 5월 여성가족부는 위기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투자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그중 하나가 2017년까지 가출 청소년 쉼터 수를 170개(현재 109개)로 확대하고, 일시·단기·중장기 등 유형별로 골고루 배치한다는 구상이다. 그에 대해 최 교수는 “쉼터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현재 쉼터의 기능과 역할을 보다 명확히 해줘야 한다”고 했다.
-현재 운영하는 쉼터에 어떤 문제가 있나.
“여성가족부는 기능별 쉼터를 지향하지만 일시·단기·중장기로 구분함으로써 현장에선 ‘기간’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의식주와 의료서비스 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긴급구호’ 쉼터, 취업을 위한 자립역량 강화 중심의 ‘자립지원’ 쉼터, 가출 청소년을 위해 특화된 ‘특성화’ 쉼터 등으로 기능과 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 각각의 쉼터 구실에 맞는 프로그램을 구체화, 다양화해서 가출 청소년에게 실질적 도움이 돼야 한다.”
-가출 청소년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법적, 제도적 장치가 아직껏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건가.
“문제의 핵심은 거리에 있다. 쉼터로 들어오지 않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웃리치를 확대, 강화해야 한다. 현재 쉼터 자체적으로 활동을 벌이지만 예산 문제로 한계가 있다. 사업비 지원이 있어야 한다. 큰 틀에서 볼 때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쉼터 지원 체계와 권한 범위 등 구체적이고 상세한 법조항이 미비하다. 개정법을 근거로 제도적 측면에서 전국 쉼터를 아우르는 가칭 ‘거리청소년중앙지원단’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는 여성가족부에 의해 민간 위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공공성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
최 교수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가출 청소년에 비유했다.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듯하게 피웠나니…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청소년기는 번뇌하고 고민하고 바람에 흔들리게 돼 있다”는 그는 “안 그래도 불안하고 우울하고 고민하는 세대인데 우리 사회가 더 바람과 비에 젖게 한다. 가출 청소년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아 문제를 해결하면 청소년 문제의 절반은 해결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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