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료-옛 애인 망신주려 30대 남자 트위터 범죄 많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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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SNS 명예훼손 판결 전수 조사]판결문 51건 들여다보니

#. H 씨(31·여)는 전 남자친구 A 씨의 새로운 애인인 Y 씨(여)가 A 씨와 함께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주 올리자 화가 났다. Y 씨를 골탕 먹이기로 작정한 H 씨는 Y 씨의 회사 홈페이지에 ‘Y 씨는 직원 트위터에 손님들 욕을 많이 쓴다’ ‘친구 불러 밥 먹고 셀카 찍느라 손님 등한시하는 건 불쾌하더군요’라는 등의 비난 글을 올렸다. 또 트위터에 ‘이별 후 아무나 대충 급만난 게 사랑이라 생각한 너 참 불쌍하다’는 등의 글을 올리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명예훼손) 위반과 모욕죄로 올 9월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다.

#. 정당 당원인 P 씨(54)는 올해 6·4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에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상대 당 M 씨를 비방하기로 마음먹었다. P 씨는 선거를 3개월 앞둔 3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 후보 중 한 사람이 성폭력과 관련된 일로 졸업을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갔다고 하네요’라는 글을 올렸다. P 씨는 명예훼손죄로 올해 9월 벌금 70만 원을 선고받았다.

SNS 사용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이를 통한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의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보 취재팀이 분석한 올해 1∼9월 유죄 판결 51건 중 내용별로는 게시물을 통해 여성 피해자를 성적으로 모욕한 사건이 15건(29.4%)으로 가장 많았다. 정당인 고위 공무원 정치 이슈 관련 비방은 7건(13.7%)으로 2위였다.

이는 SNS상의 명예훼손 상당수가 치정관계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판결문상 범행 동기가 치정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11건(21.6%)을 차지했으며 동기가 명시되지 않은 사건도 상당수가 치정사건으로 분석됐다.

형량별로는 벌금형이 35건, 징역형(집행유예 포함)이 15건으로 가벼운 처벌인 벌금형이 더 많았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건에서도 특정 여성의 나체 등 음란 사진을 게시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연인 사이로 지내던 S 씨(31·여)가 헤어질 것을 요구하자 S 씨의 알몸 사진을 트위터와 웹사이트, 블로그 등에 게시한 A 씨는 정통법(명예훼손)뿐 아니라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등도 위반해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세월호 유족을 모욕했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건도 있었다. K 씨(42)는 올 4, 5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금수만도 못한 밥버러지들!!’ ‘정말 버릇 ○같이 들이네∼배타고 가다 자식 죽은 게 뭐 큰 벼슬한거라고∼’라는 글을 게시했다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유족을 모욕한 게시글에 동조했다가 처벌되기도 했다. K 씨(50·여)는 5월 다른 사람이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세월호 주인인가? 왜 청와대 가서 시위하나?”라고 쓴 글을 보고 “그러게요, 모두 미쳤나요”라는 댓글을 달았다가 모욕죄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트위터가 허위사실 유포에 가장 많이(21건) 사용된 것은 팔로어 다수가 게시 글을 읽을 수 있고, 손쉽게 리트윗할 수 있어 확산 속도가 빠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피고인의 연령대별로는 30대(20건·39.2%)가 가장 많았지만 카카오스토리를 사용한 범죄는 피고인이 전 연령대에 고르게 있었다. 카카오톡과 연동돼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연령에서도 카카오스토리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죄명은 정통법(명예훼손) 위반이 36건으로 가장 많았고 형법상 모욕죄도 8건이나 됐다.

박한우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SNS는 실명을 기반으로 한 매체임에도 상대방과 대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게시물을 올릴 때 책임감을 덜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SNS의 파급력이 엄청난데도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도 사이버 명예훼손의 또 다른 이유”라고 말했다.

SNS를 통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도 3건이 있었다. J 씨(48)는 2012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등의 북한과 김정일, 김정은 부자를 찬양하는 게시물 링크를 트위터에 올렸다가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 수사담당자들이 밝히는 고충 ▼

“허위글 유포단계 역추적 그야말로 막노동
SNS업체 협조 안하면 수사 사실상 어려워”


“○일 ○○시경 ‘단톡방’(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 올린 글은 누구한테 받았습니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허위사실 유포 사건 수사는 통상 최초 발원지를 찾아내기 위해 이처럼 유통 단계를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친구 연인 직장 동료로부터, 혹은 등산모임이나 동창회 단톡방을 거쳐 최초 수사 대상자의 스마트폰까지 확산된 경로를 한 단계씩 역순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최근 굵직한 SNS 루머(속칭 찌라시) 사건을 다룬 검사, 경찰에게 실제 수사과정과 난점을 들어봤다.

지난해 카카오톡 등으로 ‘황수경 아나운서 파경’이라는 헛소문이 유포됐던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는 기자에게 “(찌라시 수사는) 일종의 막노동에 가깝다”고 토로했다. 이 사건은 피해자의 지인이 찌라시가 담긴 메시지를 받은 뒤 신고해 수사가 시작됐다. 담당 검사는 “수사는 단체 카톡방에서 찌라시를 받은 사람에게서 시작해 그 단톡방에는 누가 올렸는지, 그 사람은 누구에게서 받았는지 차례차례 물어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 아나운서 사건 당시엔 다행히 6, 7단계 정도에서 최초 유포자가 한 일간지 기자와 블로그 운영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사하는 데 한 달 정도가 걸려 카톡의 서버에 대화 내용이 저장되는 기간을 한참 초과했지만 다행히 대부분의 피조사자가 사실대로 털어놨기 때문에 최초 유포자를 잡을 수 있었다. 담당 검사는 “중간 단계의 누군가가 ‘송신자’를 밝히지 않으면 서버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야 해 한 단계 올라가는 데 3, 4일이 걸린다”며 “서버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간을 줄이면 찌라시 수사는 사실상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을 모욕하거나 구조 상황을 왜곡한 찌라시성 게시물들은 별도의 신고 없이 수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지인들이 공유하는 SNS뿐 아니라 대중에 공개돼 있는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급속히 확산됐기 때문이다. 당시 관련 수사를 했던 장진욱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기획운영팀장은 “신고도 많았지만 워낙 사고 당사자들에 대한 악성 글이 많아 수사관들도 인터넷 주요 게시판 상황을 주시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 ‘퍼나르기’ 돼 있는 악성 게시글 중 게시 일시가 가장 빠른 것을 찾아낸 뒤 해당 글의 최초 작성자를 찾아 나섰다.

장 팀장은 “참사 이후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상처가 되는 허위 사실을 유포한 자들은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게 국민적 정서였다”며 “SNS 검열 논란이 확산되며 피해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악성 찌라시 수사까지 위축될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SNS 명예훼손#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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