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도로위 양보운전의 나비효과… 가정과 직장에도 긍정 에너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7일 03시 00분


한국의 도로는 살벌하다. 방향지시등을 켜면 오히려 옆 차로의 차량이 빠르게 앞지르곤 한다. 신호 없는 교차로에선 먼저 가라는 손짓 대신 ‘저리 비켜!’라고 외치듯 상향등을 번쩍이는 차량이 많다. 이런 반칙운전을 몰아내려면 더 많은 양보운전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들은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최근 한국교통연구원 설재훈 선임연구위원은 30세 이상 운전자 1014명을 설문조사해 운전 습관과 운전자의 사회경제적 요인 간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정 및 직장 만족도가 높을수록 양보운전을 많이 하고 교통법규 위반 및 교통사고 발생 횟수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설 연구위원은 “양보운전으로 인한 이득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양보운전이 운전자의 삶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통법규를 지키면서 다른 운전자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양보운전’. 여전히 양보운전은 ‘손해 보는 일’이라는 그릇된 인식도 적지 않다. 본보 취재팀은 10년 이상 교통법규 위반이나 사고 이력 없이 양보운전을 실천하는 8명을 만나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다.

○ 양보운전의 미학 하나, 여유


양보운전자들은 양보하는 운전 습관 덕분에 일상생활에서도 여유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있는 직장인 박준규 씨(51)는 “혼자만 편하고자 하는 운전이 아닌 만큼 양보를 하면 남들도 편하고 그만큼 내 마음도 편안해진다”며 “이런 마음의 여유는 일상생활 전반으로 이어져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47년 운전 경력의 최홍운 씨(75)도 “오랜 시간 실천한 양보운전을 통해 일상에서 여유를 찾고 항상 미리 대비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며 “주변 사람과 서로 갈등하거나 화를 내는 일도 확연히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양보운전을 습관화하면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태도가 운전 외의 다른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강조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김인석 박사(심리학)는 “특정 행위가 긍정적 효과를 내면 이를 합리화해 다른 행위에도 유사하게 적용하는 연쇄작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 안정감으로 이어지는 양보

지난해 발생한 교통사고 21만5354건의 발생 원인을 살펴보면 안전운전 불이행(56.4%), 신호 위반(11.3%), 안전거리 미확보(9.3%) 순이다. 양보운전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사고 발생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

양보운전은 교통사고 가능성을 줄여줘 운전자에게 심리적·물질적 안정감을 준다. 직장인 정희진 씨(45·여)는 “교통사고가 한 번 나면 사고 수습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 일상생활이 흐트러진다”며 “양보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방지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훨씬 안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과속 등의 반칙운전이 시간을 절약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고 위험성 등 잠재적 비용을 생각하면 결코 이득이라고 볼 수 없다. 26년 무사고 경력으로 건설교통부 장관 표창을 받은 화물기사 오주석 씨(53)는 “24t 탱크로리를 운전하며 난폭운전을 하면 차량이 금방 망가지고 기름값도 훨씬 더 쓰게 된다”며 “사고가 나지 않도록 정속으로 양보하며 주행하는 게 오히려 속이 편하다”고 말했다.

○ 생활에서도 조심조심

양보운전 습관은 ‘안전의 생활화’로 이어진다. 운전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만일에 대비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택시기사 임원철 씨(61)는 “안전을 중요시하는 습관 때문에 평상시에도 매사에 조심스럽게 대처하는 편”이라며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아들과 딸도 자연스레 양보운전 습관을 물려받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10년 무사고의 강종윤 씨(30)는 늘 양보운전을 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연스럽게 양보운전 습관이 생겼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독일 영국 등 많은 교통선진국에서는 교통안전교육을 시민교육의 핵심으로 삼아 의무화하고 있다. 교통법규 준수가 곧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 성숙한 시민의식을 함양하고 안전의식을 갖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공동기획: 안전행정부·국토교통부·경찰청·교통안전공단·손해보험협회·현대자동차·한국교통연구원·한국도로공사·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tbs교통방송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양보운전#나비효과#긍정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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