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9일 전남 순천 매산고 학생들은 전날 수도 서울이 함락됐다는 소식에 술렁거렸다. 이들은 "지금은 공부할 때가 아니다"고 외쳤다. 학생 31명은 각자 집게손가락을 칼로 그어 "개성 10용사의 뒤를 이어"라는 내용의 혈서를 썼다. 개성 10용사는 1949년 국군 1사단이 개성 송악산 일대를 경비하던 중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4개 고지를 함락 당하자 포탄을 가슴에 안고 적진으로 뛰어들어 산화한 고 서부덕 소위 등 10명이다.
당시 17~19세이던 학생들은 자신이 쓴 혈서를 들고 순천역 앞에 주둔 중이던 육군 15연대를 찾아가 학도병에 지원했다. 이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전남 동부지역 고교생 300여명이 잇따라 지원했다. 매산고 학도병들은 전북 남원·임실 전투를 거쳐 경남 하동·마산전투까지 함께 참여했다. 이어 제주도에서 각 부대에 편입돼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이성수 씨(84·대령 예편)가 속한 부대는 1950년 10월 26일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이 씨는 압록강에 다다르자 "이제 통일돼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공군이 밀고 내려오면서 1953년 6·25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나긴 전투를 해야만 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 매산고 학도병 31명 중 절반 이상이 전사했다.
매산고의 전설이 된 학도병들이 64년 만에 모교에 돌아왔다. 육군 31사단과 순천매산고는 21일 6·25참전용사 모교 동판증정 행사를 가졌다. 가로 90㎝, 세로 120㎝크기인 동판에는 매산고 출신 학도병 31명과 6·25참전용사 12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행사에는 6·25참전 학도병인 최은오 씨(81·대령 예편) 등이 참석했다. 최 씨는 "동해안 884고지 전투에서 많은 전우들을 잃었다. 펜 대신 총을 잡아야 했던 학도병들의 아픔이 잊혀진 같아 아쉬웠는데 64년 만에 모교로 귀환할 수 있게 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순천매산고는 헌정 받은 동판을 본관 중앙복도에 부착해 후배들이 6·25참전 선배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이어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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