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선택 아닌 필수… 경제력 대신 ‘가족 가치’ 큰틀서 봐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5일 03시 00분


[출산 없이 미래 없다]<6>출산-가정은 인생의 성공요건

《 회사원 김보길 씨(32)는 2년 전 결혼하면서 아버지에게서 5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아버지가 어렵게 모은 쌈짓돈을 받는 것이 죄송했지만 주택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결혼 후 2년이 흘렀지만 김 씨는 아직 자녀를 낳지 않고 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던 것만큼 자식을 위해 헌신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김 씨는 “현재처럼 월급쟁이로 살면 자산을 늘리기 힘들 텐데, 자식 결혼자금 지원은커녕 대학등록금은 지원해줄 수 있을지 걱정이다”라며 “뒷바라지 부담 때문에 아이를 낳더라도 둘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부모에게 받은 만큼 자식에게 돌려주지 못하는것이 두려워 출산을 꺼리는 것은 김 씨만의 생각은 아니다. 20, 30대 청년들은 이 같은 생각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일까. 》

○ 경제 여건에 대한 집착, ‘저출산의 덫’

현재 20, 30대 청년들은 역사상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가장 많이 받은 세대라는 게 중론이다. 청년들의 부모는 한국 산업화를 일군 50, 60대 베이비붐 세대다. ‘우리는 고생해도 다음 세대는 잘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자녀를 많이 낳았다. 베이비붐 세대가 아이를 주로 낳았던 1980년 신생아 수는 86만 명으로 현재(2013년 43만 명)의 두 배에 이른다.

자녀를 많이 낳은 만큼 헌신적인 지원도 뒤따랐다. 자신은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은 잘 먹이고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했다. 실제로 2012년 결혼한 남성은 부모로부터 평균 4500만 원가량을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결혼 비용(7545만 원)의 61.4%에 해당하는 액수다. 여성은 58.5%(3000만 원)를 지원받았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은 부모 세대와는 상황이 다르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 불황으로 안정적인 일자리가 줄어 다음 세대를 위해 투자할 재화가 부족하다.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자수성가를 할 가능성도 줄었다. 이 때문에 부모와 함께 살 때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출산까지 기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인구학자 볼프강 루츠는 이런 현상을 ‘저출산의 덫’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젊은층의 미래 기대소득이 현재의 소비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저출산이 장기화한다는 것이다.

○ “출산은 후대를 위한 책임”

전문가들은 ‘저출산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미래의 ‘가족’ 가치에 대한 고찰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인 정책 수립에 앞서 우리 사회의 가족에 대한 관념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용 강남대 교양학부 교수(인구학)도 가족에 대한 젊은층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젊은 세대는 경쟁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부모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사용했지만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의식은 약하다”며 “가족주의의 개인화를 넘어 진정한 가족 가치를 회복하지 못하면 저출산에서 탈출하는 것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출산의 조건을 경제적으로만 따지는 세태도 반성이 필요하다. 고선주 가정을건강하게하는시민의모임 공동대표는 “젊은층은 결혼을 대입, 취업처럼 스펙 쌓기의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경제적 조건을 완비하지 않으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데, 가족을 이루는 건 경제적 가치를 초월한 것”이라며 “우리 모두는 자녀를 낳고 기르면서 이 사회가 지속 가능하게 만들 의무가 있다. 젊은층이 출산에 대한 책임의식을 좀 더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가정에서의 성공도 인정해줘야”

가정보다 일을 중시하는 가족 문화도 저출산의 덫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손꼽힌다. 한국 근로자의 평균 노동 시간은 다른 나라에 비해 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1년 자료에 따르면 주당 40시간 이상 일하는 남성 비율은 81.2%로 OECD 평균(72%)보다 훨씬 높다. 여성 근로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주 40시간 일하는 여성 근로자의 비율은 68.7%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OECD 평균(48%)의 1.4배에 이른다.

일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아이를 낳고 기를 여유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의 84.9%는 ‘근로시간 때문에 아이를 돌볼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85.5%는 ‘자녀 학습지도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성용 교수는 “산업화를 겪으면서 우리의 삶은 가족보다 일에 치우쳤는데,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저출산 탈출은 요원하다”며 “사회에서의 성공 못지않게 가정에서의 성공도 인정해주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男 육아휴직 적극 늘리자▼

법으로 보장해도 이용률 고작 2%대… 스웨덴 ‘부인11+남편1개월’ 할당 주목


“회사 생활 포기했냐?”

회사원 임모 씨(37)는 올해 초 육아휴직을 신청했다가 상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이전까지 임 씨의 회사에서 남성이 육아휴직을 허가받은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임 씨는 1년 전 미국으로 두 자녀와 아내를 이민 보낸 뒤 홀로 한국에 남았다. 임 씨는 “개인적으로 육아휴직이 절실한 상황인데, 상사는 회사 눈치만 보는 것 같아 화가 난다”며 “10개월째 육아휴직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데,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저출산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남녀가 육아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가족 모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 추세인 상황에서 남성의 육아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직장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임 씨의 사례처럼 남성의 육아 참여에 대한 인식은 낮은 실정이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남녀는 1년씩 육아휴직을 보장받고 있다. 하지만 전체 육아휴직 사용자 중 남성의 비율은 2012년 2.8%에 그쳤다.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 기업에서는 사실상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노르웨이 스웨덴이 모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육아휴직 남성 할당제’를 대안으로 주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이 육아휴직 1년 중 11개월 정도를 사용하고 나머지 1개월은 남성이 휴직을 하는 식이다. 회사는 인력 손실 등 손해를 최소화하면서 남성의 육아 참여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다.

남성 할당제가 정착되면 남성과 여성의 육아휴직 총 기간을 자녀 1명당 14개월 이상으로 재조정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현재 법적으로 남녀 각각 1년씩 총 2년을 보장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만큼 실현 가능한 총량을 정해놓고 남녀가 탄력적으로 휴직 기간을 조정할 수 있게 하자는 것.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할당제를 경험한 남성들은 이전에 비해 가정에 대한 적극성이 높아진다. 이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양육 참여는 자녀의 심리적 안정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며 “공공기관부터 선도적으로 할당제를 실시해 민간 기업까지 확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저출산#육아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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