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의 여운은 오래 남았다. 시인은 말했다. “여음(餘音)이 좋아 갖고 다니는 티베트의 종입니다.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렇게 여음이 있어 울림이 오래가는 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곤 해요.”
‘사이의 미학’이라는 평가를 받는 강은교 시인(69·사진)의 대중 시학 강의는 이렇게 시작됐다. 25일 대전 서구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독서모임 백북스 강연에서다. 최근 13번째 시집 ‘바리연가집’을 낸 강 시인은 국내 시단의 거목으로 2011년 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정년을 마친 뒤에도 창작 활동을 계속하는 중이다.
“닿지 않기에 그리워함, 이것이 시가 아닐까요. 한 행과 한 행 사이에는 무수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고 시의 행을 이어갔지만 그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는 서사가 있는 거죠.”
그는 “한용운은 ‘님의 침묵’이 어느 유명인의 장례식에서 조시(弔詩)로 쓰인 것을 보고 참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시는 한용운이 세속에서 어느 여인과 열애할 때 쓴 사랑의 시고 연애의 시다. 이렇게 이중성과 다중성, 중층성이 있는 시야말로 명시 아니냐”고 강조했다.
시는 쓰고 싶은 것들이 넘쳐흐를 때 써야 한다는 게 강 시인의 생각이다. 한용운과 김소월의 시를 대표적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시 가운데 상당수는 한마디로 ‘징징거린다’는 느낌이다. 시가 메시지를 억지로 던져 주려는 듯하고 비틀어 쥐어짜 나온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시집 ‘바리연가집’에서 ‘아벨서점’을 앞세운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아벨서점은 인천에 실존하는 이 헌책방입니다. 내 문학의 자궁이에요. 고교시절 이곳에서 읽은 수많은 책들이 문학의 자산이 됐죠.”
강 시인은 처음에는 뤼팽과 셜록 홈스 등 탐정소설을 좋아했다. 그러곤 자연스럽게 니체 등 철학과 고전으로 옮겨갔다. 자신만의 독서의 길을 찾는 과정이었다.
강 시인은 서른 살 때쯤 뇌수술을 받은 뒤 지금까지 항경련 약을 복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결핍과 고통이 그를 시에 천착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제부터라도 종의 여음 같은 시를 한 편 쓰고 싶다”는 강 시인. 수많은 명시를 남겼음에도 그는 여전히 ‘초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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