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직원들이 모두 출근하기 전인 오전 9시. 병원에 스마트폰 카메라의 촬영음이 울려 퍼진다. 빈 사무실 안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병원장 ○○○’이라고 쓰인 검은색 명패. 사람들이 문 앞에서 찍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명패다. 병원 계단 벽에는 ‘2011년 프리미엄 브랜드 선정’이라는 문구의 상패가 걸려 있다. 또 스마트폰의 플래시 세례가 이어진다.
이번에는 병원 관계자가 지방흡입수술 전후를 비교한 사진을 프로젝터로 보여준다. 아니나 다를까, ‘찰칵’ 소리가 계속해서 울린다.
지난달 19일 아침, 서울 서초구의 서울365mc지방흡입병원. 이곳에서는 중국 현지 여행사 관계자 14명이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한국관광공사의 초청으로 베이징(北京)과 시안(西安), 청두(成都) 등지에서 온 이들은 11월 17일부터 4박 5일 일정의 ‘의료 관광 전문 여행사 직원 초청 양성 교육’을 소화하고 있었다. 이들을 비롯해 모두 41명이 국내 유명 병원을 돌아보며 교육을 받았다.
중국 여행사 직원들은 마치 관광을 온 듯 병원 구석구석의 사진을 찍었다.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가이드에게 “저스선머(這是什요·이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대답을 듣고 나면, 어김없이 스마트폰을 들이댔다. 이들이 이렇게 열심히 사진을 찍는 건 중국의 손님들에게 ‘인증’을 하기 위해서였다. 여행사에서만 12년을 일했다는 황샤오(黃笑) 씨는 “중국으로 돌아가 한국 의료관광을 홍보할 때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국가여유국(여행 및 관광 담당 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여행에 나선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은 모두 9818만5200명이었다. 올해 해외여행을 즐긴 중국인 관광객은 1억 명을 돌파해 1억16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중국인 관광객의 대표적인 여행 목적지 중 하나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 단순한 통계 자료를 넘어 보다 세밀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잘 몰랐던 중국인 관광객들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 예비남편과 함께 온 30대 여성, 6억9000만원 긁고 가 ▼
“나 한국에 놀러왔거든” 과시… 틈만 나면 스마트폰 찰칵찰칵 실시간으로 SNS에 여행 중계… “인증샷 찍어가면 3배값까지 받아” 관광 겸한 보따리상들도 늘어
서울 어디에서나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의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는 쉬지 않는다.
3일 저녁 서울 중구 남대문로 롯데백화점 본점과 에비뉴엘 사이의 골목.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환경 시계’ 조형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환경 시계는 원래 환경 문제를 일깨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들이 한국에 있었음을 인증해주는 ‘물증’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중국인 관광객의 ‘인증샷 사랑’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측면이 크다. 젊은 중국인 관광객들은 중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웨이보 등에 자신이 찍은 사진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을 즐긴다.
의도야 어떻든, 이들의 SNS 글은 다른 중국인 관광객에게는 정보가 된다. 한국관광공사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해 발간한 ‘중화권 관광 소비자 시장 조사 및 마케팅전략 연구(중화권 시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여행 정보를 얻기 위해 SNS를 활용한 중국인 관광객의 비중은 조사 대상의 40.9%에 달했다. 이는 여행사 온라인 사이트(56.2%)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것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인증샷’을 사랑하는 중국인 관광객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여행객인 동시에 자신의 거주지 근처에서 활동하는 ‘보따리상’이다. 한국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해 현지에 가져간 뒤 정가의 2, 3배에 판다.
이들이 이렇게 가격을 높여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인증샷’에 있다. 3일 명동에서 만난 40대 중국인 여성은 여행사 가이드와 화장품 도매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 매장에서 찍은 인증샷이 있으면 제품을 직접 사왔다는 신뢰를 줄 수 있다”며 “정가 6만 원짜리 제품이라면 중국에서는 20만 원까지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중국인 관광객은 한국 화장품 매장에서 점원과 사진을 찍거나 진열대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다.
돈도 ‘팍팍’ 바가지도 ‘팍팍’
중국인 관광객은 외국에서 돈을 아끼지 않는다. 돈이 많아서라기보다는 남에게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 선전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는 배영준 C팝 인터내셔널 대표는 “중국인에게 여행이란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처럼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소비재”라며 “그들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중국 관광객들은 ‘바가지 상혼’의 좋은 먹잇감이 되곤 한다. 서울 강남구의 한 치과병원에서 일하는 유모 씨(27·여)는 2주 전쯤 40대 중국 여성 한 명이 치료비를 180만 원이나 내고 가는 것을 봤다. 한국 사람이었다면 100만 원 정도 받을 것을 병원에서 80만 원이나 더 받은 것이다. 유 씨는 “브로커가 관광객의 경제 수준을 미리 알려주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 돈을 더 받는다고 들었다”며 “돈이 많은 손님일수록 가격에 둔감하기 때문에 병원에서 보통 30∼40%씩은 치료비를 부풀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엔 중국인 관광객도 옛날처럼 눈 뜨고 당하지만은 않는다.
중국 기업 사장의 부인인 상쥐안쥐안(商娟娟) 씨는 10월 말 성형 관광을 목적으로 브로커를 따라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가 방문한 병원에서는 수술비용으로 6000만 원이 넘는 돈을 요구했다.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지나치게 비싸다고 생각한 상 씨는 결국 평소 알고 지냈던 한국인을 통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다. 수술 비용은 ‘겨우’ 2000만 원이었다.
김세만 한국관광공사 의료관광센터장은 “중국인 관광객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취급을 받으면서 시장이 혼탁해졌다”며 “관광공사에서는 중국 여행사 등과 협조해 한중 통합 플랫폼인 ‘VISIT 메디컬 코리아’를 만드는 등 안전한 의료 관광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매력 높은 ‘서상커’
돈을 아끼지 않는 중국인 관광객 중에서도 ‘거물’이 있다. 엄청난 구매력을 자랑하는 이들은 ‘서상커(奢尙客)’라고 불린다. 서상커는 고급·럭셔리(Luxury)를 뜻하는 ‘서상(奢尙)’에 관광객을 의미하는 ‘커(客)’를 붙인 신조어다.
이들은 한 번 한국을 찾을 때마다 수천만∼수억 원을 펑펑 쓰는 ‘초(超)고소비 계층’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예 외래 관광객 실태조사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1만 달러 이상을 쓴 여행객(단체여행객 및 에어텔 관광객의 경우 1만1000달러)은 통계 대상에서 제외된다. 지출 규모가 너무 커 유의미한 통계 작성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8월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찾아온 33세의 한 중국인 여성 이야기는 이들의 소비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비 남편과 함께 매장에 나타난 이 여성은 이날 하루 동안에만 백화점에서 6억9000만 원을 썼다. 그가 산 제품은 딱 두 가지였다. 자신과 예비 남편이 낄 결혼반지(5억5000만 원)와 블루 사파이어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1억4000만 원)였다.
한 외국계 호텔 관계자는 “VIP급의 중국인 관광객은 식탁 매너도 훌륭한 편이고, 영어로 간단한 의사소통이 되는 경우도 많다”며 “이들은 다른 중국인 관광객의 무례한 태도를 오히려 창피해하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CNN트래블의 디지털 프로듀서인 카를라 크립스 씨는 인터넷판 기사를 통해 중국 부자 관광객들과 관련한 ‘도시 전설’을 하나 전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밀라노에서 부유한 중국인 여성이 담배에 불을 붙인 채 고급 부티크 매장에 들어왔다. 한 직원이 여성에게 다가가 담배를 꺼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그 여성은 매장 안에서 담배를 피우게 해주면 지갑을 스무 개 사겠다고 했다.’
재미난 것은 그 다음 일어난 일이다. 직원은 중국인 여성에게 바로 재떨이를 건네줬다. 다소 냉소적이기는 하지만, 구매력이 높은 중국인 관광객이 세계 각국에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구매력이 높은 중국인 관광객은 고궁(古宮) 같은 유적지보다는 홍익대 앞이나 이태원 같은 손꼽히는 번화가를 선호한다. 이는 동아일보가 문화관광연구원의 ‘2013 외래관광객 실태조사’의 원자료를 지출 금액별로 재분석한 결과 드러난 사실이다. 지난해 1인당 5000달러(약 556만 원) 이상을 쓴 중국인 관광객이 방문한 주요 관광지에는 신촌·홍익대 앞(4위), 이태원(7위) 등이 포함됐다. 4999달러 이하를 쓴 중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인기가 없는 곳(신촌·홍익대 앞은 8·9위, 이태원은 11∼15위)이었다. 고궁은 지난해 방한 중국인의 주요 방문 장소 순위에서 4위(응답 비중 33.4%)를 차지했지만, 5000달러 이상을 쓴 중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외면(10위)당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국인 관광객
중국인 관광객은 변덕이 심하다. 유행에 따라 관광지를 수시로 바꾸는 데다 환율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의 급격한 변화다. 2009년 중국인 관광객의 주요 방문지 순위에서 태국은 10위에 그쳤다. 2011년에도 7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2년 새 순위가 4위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 성장률은 78.7%에 이르러 우리나라(425만 명)를 위협하는 수준(401만 명)이 됐다.
이런 현상은 영화 한 편 때문에 일어났다. 2012년 개봉한 중국 영화 ‘로스트 인 타일랜드(Lost in Thailand)’에는 태국 치앙마이가 주 무대로 등장한다. 이후 거짓말처럼 태국을 찾는 관광객이 늘었다. 류한순 한국관광공사 중국팀 차장은 “과도한 중국인 유입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 홋카이도의 인기도 처음에는 중국 영화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도 중국인의 변심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다. 쇼핑을 즐기는 중국인 관광객의 특성 때문이다.
덕분에 최근 일본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일 갈등 때문에 일본을 찾은 중국인 수가 2012년보다 6.5% 줄어든 183만 명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 들어 엔화 약세 현상이 지속되자 상황이 급변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1∼10월 일본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201만 명에 달한다. 한 해 방일 중국인이 200만 명을 넘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청두의 한 여행사에서 일하는 왕옌롱(王o榮·24) 씨는 “중국에서 외국으로 싼값에 여행을 하면 웬만한 국내 여행보다 싸게 먹힌다”며 “쇼핑 비용까지 생각하면 현지 물가나 환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 발길 한국으로 이끄는 ‘화장품’
한국은 전 세계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세 번째로 많이 찾는 국가다. 하지만 1, 2위가 각각 홍콩과 마카오인 것을 생각하면 한국은 사실상 중국인 관광객의 제1 해외 관광지다.
한국이 중국인 관광객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중국인 관광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요소인 ‘유행’ ‘가격’ ‘쇼핑’을 모두 갖췄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화장품 분야는 이 세 가지가 결합된 최고의 관광 상품으로 꼽힌다.
3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인근에 있는 코리아나화장품의 화장품 멀티숍을 찾은 중국인 주위안사(朱苑莎·33·여) 씨는 이날 달팽이크림, 말크림 등 다양한 화장품을 14만4000원어치나 샀다. 주 씨는 “평소 친구들과 위챗(중국의 SNS) 등을 통해 한국 화장품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며 “품질도 좋고 자극이 적은 점도 좋지만, 주로 ‘한국 제품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나도 한번 써볼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 화장품의 유행은 한류와도 맞닿아 있다.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인 코스맥스 중국법인의 최경 총경리(사장)는 “한류로 시작된 유행이 이제는 한국 연예인의 독특한 화장법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고 있다”며 “최근에는 메이크업을 배우러 한국으로 떠나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동아일보가 코리아나화장품과 함께 11월 27일부터 5일간 서울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한국 화장품을 선호하는 이유 1위로 ‘한류 스타가 광고한 제품이라 신뢰도가 높다(46%·복수응답)’가 꼽혔다. 뿐만 아니라 전체 응답자 중 96%는 ‘화장품을 사기 위해서라면 한국을 재방문할 생각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 중국인 티내면 바가지… 한국 지인에게 SOS 치기도 ▼
브로커와 짜고 가격 높여 불러 진열 상품 만졌다고 점원이 큰소리… 한국말로 항의하니 그제야 사과 엔저에 中관광객 다시 일본행… ‘불친절 한국’ 이미지 탈피 시급
하지만 이는 화장품의 인기가 시들면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의 증가세도 주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안의 한 여행사 대표인 장산(張‘) 씨는 “현재 중국 청소년들도 한류나 한국 화장품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이 인기는 계속 지속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그 인기가 떨어지면 한국도 외면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는 ‘중국인 관광객 앓이’ 중
‘중국인 관광객 앓이’ 중인 곳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해외여행을 즐기는 중국인 관광객 수는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올해 1억 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는 중국인 관광객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왕양(汪洋) 중국 부총리는 4월 열린 ‘2014 세계여행관광협회(WTTC) 글로벌 서밋’에서 “해외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5년 안에 5억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세계 관광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 안팎. 하지만 이들의 소비력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지난해 해외 관광에서 쓴 돈은 1289억 달러(약 143조 원·세계 1위)에 이른다. 세금 환급 전문 업체인 글로벌 블루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의 전 세계 면세시장 점유율은 약 27%에 달했다.
주요 관광국들은 중국인 관광객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영국은 올 8월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비자신청센터에 ‘특급 우선 비자 제도’를 도입했다. 중국인들이 24시간 안에 비자 신청부터 수령까지 끝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중국과 껄끄러운 관계를 지속해왔던 대만은 2008년 중국인의 대만 여행을 허용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중국 36개 도시의 관광객에 대해 자유여행 시장을 개방했다. 일본도 내년부터 중국인 관광객 중 고소득층에 대한 비자 발급 조건을 완화한다는 방침을 최근 밝혔다.
화려함 속의 이면… “중국 ×들”
급성장에는 부작용도 있는 법.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차별대우나 이들에 대한 불만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작게는 면세점에서 증정하는 샘플을 중국인에게는 주지 않는 것부터, 심한 경우에는 공공연한 인종 차별적인 행위나 발언까지 나온다.
중국인 전담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이모 씨(41·여)는 얼마 전 항공사 직원이 중국인 관광객 앞에서 대놓고 “중국×들 짜증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여행용 카트를 제 위치에 두라고 영어로 말했는데 아무도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최근 유럽 여행을 다녀온 김남석 씨(27)는 바티칸 투어 도중 현지 가이드의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들었다. 현지에서 고용된 이 외국인 가이드가 한국인 관광객들이 실내에서 소란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자 “당신들은 중국 사람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시끄럽게 떠드냐”고 짜증을 낸 것이다.
이런 대접을 받는 중국인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의 한 여행사에서 일하는 조선족 전영희 씨(50·여)는 최근 VIP 관광객들을 데리고 명동의 한 안경점에 갔다가 점원과 크게 싸웠다. 관광객들이 안경에 손을 대자 점원이 손을 찰싹 때리며 “만지지 말랬잖아”라고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전 씨는 “내가 한국말을 할줄 알아서 항의를 했더니 그제야 사과를 하더라”며 “중국인을 ‘불친절하게 굴어도 물건을 사가는 호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접받는 문화’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이 이런 일을 반복해 겪을 경우 한국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나빠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중국 현지 여행사의 한 관계자는 “불친절한 이미지가 쌓여 국가 이미지로 이어질 경우 중국인 유치에 큰 타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류 열풍으로 한국인이 중국인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다는 생각은 우리의 편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 대표는 “중국인들에게 한국은 선진국도, 선망의 국가도 아니다”라며 “싼 물가를 실컷 즐길 수 있는 관광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가 지난달 21일 중국 여행사 관계자 41명을 대상으로 ‘중국인 관광객은 한국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동경의 대상’이라고 답한 사람은 3명(7.3%, 복수응답)에 불과했다. 반면 ‘쇼핑하기 좋은 나라’라고 답한 사람은 70.7%로 공동 2위였다.
한국관광공사 중국팀 관계자는 “중국이 아시아에서 선진국이라고 인정하는 곳은 일본밖에 없다”라며 “일부 젊은층에서는 ‘우리보다 경제 규모도 작은 나라가 잘난 체한다’는 반응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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