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제주道-의회 예산안 갈등… 상처뿐인 ‘누더기 예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31일 03시 00분


2015년 수정예산안 4.4%줄여 통과

제주도와 제주도의회가 새해 예산안을 놓고 벌인 갈등이 상처뿐인 ‘누더기 예산’으로 끝났다. 제주도의회는 29일 제325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를 속개해 의원들이 긴급 발의한 수정예산안을 상정해 재석의원 37명 중 찬성 36명, 기권 1명으로 가결했다.

당초 제주도가 제출한 3조8194억 원 가운데 1682억 원(4.4%)이 삭감됐다. 제주를 제외한 16개 광역자치단체의 내년도 예산안 평균 감액비율(0.37%)의 12배에 이른다. 지자체의 예산 삭감 비율로는 사상 최고치다.

삭감 예산 1682억 원 중 1억9200만 원은 예비비로, 1680억800만 원은 내부 유보금으로 돌렸다. 내부 유보금은 행정자치부의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지침에 따라 처음 도입된 제도로 추가경정예산에서 다시 편성되기 전까지는 집행할 수 없는 예산이다. 제주도의회 이선화 운영위원장은 수정예산안 제안 설명을 통해 “사업계획이 미비하거나 투자 및 융자 심사 미반영, 외유성 여행경비, 선심성 예산 등을 삭감했다”고 설명했다.

○ 진흙탕 싸움

새해 예산안을 놓고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는 줄곧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당초 도의회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를 거쳐 제주도가 제출한 3조8194억 원 규모의 예산안에서 408억 원을 증액, 조정했다. 하지만 원희룡 제주지사는 15일 “신규 비용항목과 증액에 대한 검토 자료를 제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세부자료 없이 사업명과 예산액밖에 받아보지 못했다”며 사실상 거부했고, 제주도의회는 곧바로 부결 처리했다. 이에 예결위는 제주도가 다시 제출한 예산안 중 395억 원을 삭감하고 355억 원을 증액, 40억 원을 내부 유보금으로 돌려 28일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제주도가 반대 입장을 공식 표명하자 이번에는 증액 없이 감액 규모를 최대한 늘린 ‘수정 예산안’ 카드를 던진 것이다.

이번 예산 삭감으로 소통정책관(옛 공보관) 부서가 직격탄을 맞았다. 내년 예산 23억7300여만 원 가운데 21억9400여만 원이 삭감됐다. 달랑 1억7900여만 원만 남은 셈이다. 통상적으로 이뤄지던 제주도지 발간 등 대부분 업무는 사실상 중단된다. 이처럼 유례없는 대폭 삭감은 예산안 줄다리기를 하면서 제주도가 도의회와 협의 없이 직접 언론매체 등을 상대로 ‘언론 플레이’를 한 데 대한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제주도 서울본부는 5억4800만 원 예산 가운데 사무실 임차료와 관리비에 해당하는 2억5700만 원이 삭감됐다.

○ 예산 갈등 지속 가능성

양측의 갈등 과정에서 재량사업비, 공약사업비 등의 명목으로 ‘의원 1인당 20억 원 예산배정 요구설’이 터져 나오면서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구성지 제주도의회 의장은 폐회사에서 “예산 집행이 멈추는 ‘준예산’으로 가는 파국을 막는 길은 새로운 예산을 만드는 일밖에 없었다”며 “집행부가 의회 증액 예산에 대해 선심성, 목적 없는 경비, 과도한 증액 예산이라며 의원들을 폄훼하고 압박한 것은 오래도록 의정사에 남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도의회 의원들이 신규 비용 항목을 만들어 예산을 배정한 것은 예산 편성권의 침해라는 지적도 있다. 사업 내용과 금액 산출 명세 등 최소한의 자료조차 없는 항목이 수두룩했다. 내년 추가경정예산에서 편성해야 하는 내부 유보금을 놓고 또다시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도 크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도#예산#제주도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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