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보상도 안 끝났고 산업단지개발 승인도 마치지 않은 내 땅에 산업단지를 건설한다면서 특정 시공사에 ‘공사도급약정서’를 써주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인천시 간부 공무원 출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특수목적법인 인천 계양구 서운일반산업단지개발㈜이 국내 대형 건설사인 태영건설과 수상한 뒷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계양구가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이 특수목적법인은 계양구 서운동 52만4910m²에 총사업비 3574억 원이 투입되는 서운산업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설립됐다. 계양구, 인천도시공사, 태영 등이 주요 주주이며 지난해 10월 24일 공무원 출신 A 씨(61)가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A 대표는 취임하던 당일 태영건설과 663억3000만 원(부가세 별도)의 ‘공사도급약정서’를 맺었다. 이 약정서에는 A 대표와 태영건설 대표이사 직인이 찍혀 있다. ‘약정서’이지만 사실상 ‘공사도급계약’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계약이 절차와 규정을 무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운산업단지는 1월 중순 정부로부터 ‘수도권정비심의’를 받을 예정이다. 승인을 아직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달 말 인천시로부터 산업단지개발계획 승인을 받게 되면 토지보상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아직 여러 절차가 많이 남아 있어 물품조사(지장물 조사)를 위해 산업단지 조성 예정용지에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의 도급계약을 체결한 것.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산업단지 예정지의 토지주들은 “심의와 승인 등 절차가 남아 있는데도 시공사를 선정해 특혜 의혹이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토지주는 “토지 보상 합의가 이뤄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시공사와 공사도급약정서를 맺은 것은 검은 거래가 있었다는 증거다. 동의도 없이 내 땅에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횡포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약정서에 적시된 도급 금액에도 의혹이 쏠린다. 토지보상금액을 뺀 순수공사비(설계가격)는 792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약정서의 도급금액은 설계가의 92%에 해당하는 663억3300만 원(부가세 별도)으로 적혀 있다. 지방 계약법상에는 최저가 입찰을 적용해 공사 도금 금액을 정하는데 통상 설계가의 74% 수준에서 공사 금액이 결정된다. 그런데도 서운산업단지 개발 과정에서 태영건설이 18%포인트나 높은 금액으로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줬다.
높은 공사비 책정은 산업단지의 평균 분양가를 높여 분양 참패로 이어질 수 있고 재정자립도 향상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을 훼손할 우려가 높다.
이에 대해 A 대표는 “이사회에서 공사도급약정서를 작성했으며, 이전부터 주주들 간에 충분한 논의가 있었다”며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위해 도급약정서 작성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A 대표가 주장하는 지난해 10월 24일 이사회는 아예 열리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서운일반산업단지개발㈜에 참여하는 민간업체 B사 관계자는 “이사회를 열기 위해서는 최소 7일 전부터 소집을 통지해야 하는데 공문이 없었고, 그날 공사도급약정서를 작성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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