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에 못다 한 사랑, 이생에 못한 인연, 먼 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에 함께 탔다가 친구들을 잃은 경기 안산시 단원고 2학년 여학생 37명이 가수 이선희의 ‘인연’을 부르기 시작했다. 무대에 오를 때부터 눈물을 흘리던 한 학생은 몇 소절이 끝나고서야 간신히 관객을 쳐다봤다. 노래 중간 중간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훔치는 학생들이 보였다. 낮게 시작된 노래는 점점 커졌고 화음이 또렷해졌다. 지켜보던 3학년 졸업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울음소리가 들렸다.
9일 오전 10시 반 단원고 강당에서 열린 졸업식은 세월호 참사로 상처받은 학생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자리였다. 참사를 직접 겪은 2학년 생존 학생들과 이들 못지않게 힘들어했던 3학년들 모두 감사와 격려를 주고받았다. 재학생 대표로 송사를 읽은 2학년 최민지 양은 “모두가 슬픔에 주저앉았던 봄, 선배님들이 있었기에, 덕분에 거센 파도 같았던 올해 봄을 견뎌낼 수 있었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졸업생 대표 오규원 군은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 준 대견한 후배들이 있었다”고 화답했다.
생존 학생들이 준비한 노래는 졸업식의 하이라이트였다. 아직 심리치료가 진행되고 있는 생존 학생들이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40명이 연습을 했지만 3명은 끝내 무대에 서지 못했다.
하지만 슬픔에만 머물러 있진 않았다. 학생들은 ‘인연’을 부른 후 이내 밝은 목소리로 뮤지컬 그리스 수록곡 ‘We go together’를 불렀다. 노래와 율동을 마치고 ‘졸업 축하해요♡’라는 팻말을 들어올리자 3학년 졸업생들은 큰 박수로 후배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2학년 남학생 17명이 졸업식 마지막에 가수 인순이의 ‘아버지’를 부르고 큰 목소리로 “졸업 축하합니다!”라고 외치자 곳곳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단원고’ 졸업생이라는 꼬리표가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내내 걱정했다. 정치권과 언론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내는 학생도 있었다. 일부 학생은 정치권이 원치 않는 대학 특례입학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2학년 딸을 잃고 이번에 그 언니가 졸업하게 된 한 어머니는 졸업식 축사에서 “단원고라는 꼬리표 때문에 상처받더라도 강하고 담대하게 헤쳐 나가라. 단원고를 당당하게 여기고 살아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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