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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주제는 ‘배려’]<7>갑질 대응 매뉴얼 만드는 기업들
백화점에서도, 비행기에서도 손님은 종업원에게 손톱만큼도 배려 없이 막무가내로 자기 요구만 내세우는 세상이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얼마나 많은 ‘을’이 직장에서 이 같은 ‘무배려 갑질’에 시달리는지 모를 일이다. 기업에선 갑질을 하더라도 ‘고객을 잘 모셔야 한다’는 판단과 함께 근로자들이 이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기업이 근로자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배려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변웅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부천 백화점 갑질 모녀 사건의 가장 큰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되지 않은 채 한쪽이 분노를 표출하는 상황이 이어진 것”이라며 “문제 상황이 닥쳤을 때 종업원을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이마트가 마련한 “대면 응대 중에 폭언과 욕설이 지나칠 경우 점포의 안전도우미를 부르고 관리자가 응대하도록 한다”는 지침은 좋은 예다.
제3자가 녹취록만 들어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전화 상담 중의 행패. 이 문제는 많은 기업이 이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욕설과 성적인 발언이 이어지면 자동안내로 경고한 뒤 차단하고 ‘블랙 컨슈머’로 지정하는 방식이 많이 쓰이고 있다.
‘과도한 친절은 배제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한걸음 더 나아간 경우도 있다. 지난해 현대카드는 전화 상담에서 쓰는 ‘보내드리오니’ 같은 말은 ‘보내드리니’로 바꾸고 ‘약간의 소중한 시간 할애 부탁드리겠습니다’란 말은 ‘짧게 안내드리겠습니다’로 바꿨다.
현대카드 측은 “과도한 친절 대신 적절한 응대를 선택하면서 불필요한 상담 시간이 줄어들고 업무 효율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러면서 현대카드 전화상담원의 퇴직률은 2011년 13.3% 수준에서 지난해 4.2% 수준으로 크게 낮아졌다.
‘을’을 고객과 동등한 위상으로 끌어올리는 발상의 전환도 눈에 띈다. 지난해 법조계 고위직 출신 인사들의 성추행 문제가 불거지면서 ‘갑질’의 대표적인 피해자로 주목받은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 강원 고성군의 파인리즈 골프장에는 이런 문제에 대한 걱정이 별로 없다. 70여 명의 남녀 캐디 대부분 자체 테스트를 거쳐 경기 중 지도가 가능한 ‘티칭 프로’ 자격을 갖췄다. 캐디를 부르는 호칭부터 ‘캐디님’, ‘코치님’으로 달라지면서 골퍼의 ‘갑질’에 시달린다는 호소가 줄었음은 물론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업체에서는 종업원을 보호할 수 있는 조직적 체계를 갖추는 것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배려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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