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2월 흥남철수 당시 1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을 피란시킨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증손자인 벤 포니 씨(28·사진). 그는 18일 “많은 한국인들이 할아버지를 잊지 않고 기억해줘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흥남철수는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동부전선에서 작전 중이던 국군과 미군 주력부대를 1950년 12월 15일부터 열흘간 흥남항을 통해 철수시킨 대규모 군사작전. 북한 실향민의 고단한 삶을 그린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이기도 하다.
“영화에서처럼 하루아침에 10만 명을 데려가겠다고 결정한 건 아니었다고 해요.”
당시 미 10군단 참모부장 겸 탑재참모였던 포니 대령은 미군 통역장교였던 고(故) 현봉학 박사와 함께 당시 지휘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수많은 무기와 장비의 선적 배치를 다시 짜며 민간인을 태울 수 있는 공간을 찾아내 매일 승선 가능 인원을 늘려갔다고 하더군요.”
그는 “이렇게 100명이 1000명이 되고 10만 명이라는 기적으로 이어졌지만 이처럼 기적이 현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인들의 강한 의지와 인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포니 대령은 한국인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은인이었지만 가족과는 관계가 소원했다. 포니 대령의 손자이자 벤 포니 씨의 부친인 네드 포니 씨가 1998년 교원연수 프로그램으로 3주간 한국에 머물면서 포니 대령의 일화가 가족들에게 알려졌다.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가 김치를 사오셨어요. 그 이후로 가족들이 한인 슈퍼마켓을 찾아 항상 김치를 사두고 먹었죠.”
한국을 가깝게 느낀 벤 포니 씨는 2009년 전남 목포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연세어학당을 졸업하고 현재는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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