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업자에게서 사건을 잘 처리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억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수원지법 최민호 판사(43·사진)가 20일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엄상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소명된 범죄 혐의의 중대성 등을 고려할 때 구속할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현직 판사가 그 직을 유지한 채 범죄 혐의로 긴급체포 된 데 이어 구속영장이 발부돼 수감되는 것은 처음이며, 판사가 재직 중 금품 받은 혐의로 구속되기는 2006년 ‘김홍수 게이트’에 연루된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이후 8년여 만이다. 조 전 부장판사는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사표가 수리돼 민간인 신분으로 구속됐었다. 특히 이날 현직 판사가 동료 판사로부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 심사)를 받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질 뻔했지만, 최 판사가 “자숙 하겠다”는 의미로 심문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법원은 수사기록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피의자 심문을 대신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강해운)는 최 판사가 ‘명동 사채왕’ 최모 씨(61·구속)에게서 2009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전세금과 주식 투자금 명목 등으로 5억 6400만여 원의 금품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최 판사가 수표와 현금 등으로 직접 받은 돈 중 3억 원은 본인 계좌에 들어갔다가 최 씨 측에 되돌려준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이 3억 원은 일단 대여금으로 분류한 뒤 이자 400만 원을 포함해 2억6800만 원을 대가성 있는 자금으로 판단해 전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최 판사는 최 씨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A 검사에게 사건 무마를 부탁해 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받아 A 검사에게 사건 관련 의견을 전달한 사실이 조사 결과 드러났다. A 검사는 최 판사와 대학 동문이자 사법연수원 동기다. 최 판사는 혐의를 대부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최 판사에게 2억여 원이 더 건너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대법원은 형사처벌과 별도로 최 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징계하기로 했다. 법관 징계는 최대 정직 1년인데 대법원은 한 번도 최대치의 징계를 내린 적이 없다. 최 판사가 2008년 검사에서 판사로 전직한 것을 의식한 대응책도 제시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경력 법관을 임용할 때 재산형성 과정을 더 엄격하게 검증하고 윤리감사 기능을 강화하는 등 제도 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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