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켜요 착한운전]깜빡이 켜고 하나 둘 셋… 앞차도 뒤차도 웃는 ‘3초의 마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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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방향지시등, 사고 줄이는 첫단추

16일 경기 성남시에서는 끼어들기를 하다 시비가 붙어 가스총을 꺼내든 운전자가 경찰에 체포됐다. “분명히 방향지시등을 켜고 들어갔는데 경적을 길게 울려 화가 났다”는 게 가스총을 꺼낸 운전자의 주장이다. 반면 피해 운전자는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차선을 끼어들어왔다”고 맞서고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는 습성이 있는 한국에선 차로를 이리저리 바꾸는 운전이 아직도 일상적이다. ‘나도 빨리 가야지’라는 생각은 정상적으로 방향지시등을 켜고 차로를 바꾸려는 차량에도 경적 소음을 퍼부으며 양보하지 않는 행태를 낳기도 한다. 이런 행태는 다시 운전자가 ‘아예 방향지시등을 켜지 말고 확 끼어들어야지’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방향지시등을 제대로 쓰지 않아 발생하는 교통사고는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 수준이다. 교통사고를 줄이고 상대방의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 첫 단추, 바로 방향지시등이다.

○ “깜빡이 켜고 하나 둘 셋!”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좌·우회전, U턴, 차로 변경을 할 때는 해당 지점에 이르기 30m(고속도로는 100m) 전부터 방향을 바꿀 때까지 방향지시등을 켜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운전자는 1∼2초간 방향지시등을 켜는 데 그친다. 아예 켜지 않는 운전자도 수두룩하다.

전문가들은 ‘3초의 여유’를 강조했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방향지시등을 켜면 그 차량이 어디로 가려는지 쉽게 알 수 있어 사고 위험을 크게 줄인다”며 “3초만 여유 있게 운전하면 차로 변경 차량이나 양보 차량 모두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향을 바꾸려는 운전자는 지시등을 켜고 3초 뒤 진입을 시작하고 양보 차량은 지시등을 보면 3초 내에 속도를 줄여 앞차를 끼워주자는 말이다.

운전자가 전방의 교통 상황을 보고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올려놓는 데 걸리는 시간은 0.75∼1초, 여기에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차가 속도를 줄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2초 이상으로 본다. 영국 스웨덴 등 교통선진국은 기본적인 교통안전 수칙으로 3초 안에 앞차에 닿기 어려울 만큼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하는 ‘3초 거리 룰’을 강조하고 있다.

차로 변경 시에는 운전자가 고개를 돌려 사각지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 자동차 사이드미러나 룸미러로 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방향지시등과 함께 빠르게 고개를 돌려 확인하는 운전습관이 중요하다.

○ 배려와 안전의 시작

전문가 지적처럼 방향지시등은 다른 운전자를 위한 배려의 신호다. 운전자는 다른 운전자나 보행자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방향지시등을 작동해야 한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진로를 변경한 운전자에게는 범칙금 3만 원(승용차)이 부과된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진로 변경, 좌·우회전, U턴, 앞지르기 등 방향지시등이 쓰이는 상황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비율은 2013년 전체 교통사고 21만5354건의 33.3%인 7만1615건에 달했다. 이 중 방향지시등을 아예 켜지 않거나 제대로 사용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가 상당수다. 박영수 경찰청 교통기획계장은 “방향전환이나 진로변경 때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으면 주변 차량이 신속히 반응하기 어려워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실제 도로에서 운전자들의 방향지시등 점등 실태는 어떨까. 본보 취재팀이 16∼18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교차로, 중구 시청 앞 교차로, 용산구 한강대교 북단교차로 등 3곳을 관찰한 결과 절반 이상의 운전자(57.7%)가 방향지시등을 제대로 켜지 않았다. 교통안전공단이 발표한 지난해 방향지시등 점등률(64.9%)보다 낮았다. 취재진이 1시간 동안 관찰한 결과 좌·우회전을 한 차량 122대 중 방향지시등을 켠 차량은 18대(14.8%)에 불과했다.

도로 위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취재팀이 직접 자동차를 몰고 1시간 동안 서울 도심 약 20km를 주행하는데 기자 앞에 끼어든 차량 32대 중 방향지시등을 제대로 켠 차량은 4대에 불과했다. 나머지 28대 중 끼어들기와 동시에 방향지시등을 형식적으로 2, 3회 켠 차량이 20대, 아예 켜지 않은 차량이 8대였다. 이날 동행한 임채홍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운전자들 간에 방향지시등을 통한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지시등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고 배려해주려는 생각 없이 그저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지시등 안켜고 불쑥 끼어들어 등골 오싹” ▼

日서 15년 무사고 베테랑, 한국서 운전대 잡아보니…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고사까지 지냈어요.”

한국에서 사케(일본술)를 판매하는 구마가이 겐(熊谷謙·41·사진) 씨는 아침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는다. 과속은 기본이고 불쑥 끼어드는 차량 때문에 출근길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최근 6개월 동안 연이어 여섯 번이나 교통사고를 당해 주변 친구들의 추천으로 고사까지 지냈다. 이제는 난폭 운전하는 한국 운전자들을 만날 때마다 저승사자를 본 것처럼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는 15년 동안 일본에서 무사고 운전을 한 베테랑 운전사였다. 틈틈이 자동차를 직접 손보며 드라이브하는 것을 즐기는 애호가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가장 질색하는 한국 운전자들의 운전 습관 중 하나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채 차로를 변경하는 것이다.

구마가이 씨는 지난해 10월 한국 운전자가 방향지시등을 켜는 것에 얼마나 인색한지 제대로 경험했다. 그는 “술을 마신 뒤 대리운전기사를 불렀는데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채 차로를 변경하다 사고가 났다”며 “나는 술을 마신 상태였고 큰 사고도 아니어서 계속 운전을 시켰는데 이후에도 방향지시등을 한 번도 켜지 않는 것을 보고 질려버렸다”고 말했다. 적어도 2, 3초간 방향지시등을 켠 뒤 조심스럽게 차로를 변경하는 일본의 교통문화와 상반된 모습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방향지시등을 켰을 때 뒤에서 양보해주지 않는 운전자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구마가이 씨는 “방향지시등을 켜면 당연히 속도를 낮춰야 하는데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고 오히려 속도를 높이는 운전자가 많다”며 “아무도 양보해주지 않으니 차로 변경을 하려는 차가 무리하게 앞지르기를 하는 등 공격적인 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구마가이 씨가 반겼던 한국의 교통문화도 있다. 운전자들이 비상등으로 감사나 양해의 뜻을 전하는 ‘비상등 매너’가 그것이다. 구마가이 씨는 “일본에서도 비슷한 상황에서 비상등으로 감사 표시를 한다”며 “한국에서는 일본보다 사용 빈도도 높고 손까지 흔들어 주는 운전자가 많아 삭막한 도로 위에서 그나마 정감을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과속방지턱의 힘! 사고건수-사망자 40% 뚝 ▼

서울 강북구 수유동 광산교차로에서는 해마다 30여 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2012년 차량 회전 때 방향을 안내해주는 유도선과 과속방지턱 등이 설치된 뒤 사고가 40%가량 감소했다. 시설물을 설치하거나 고치는 작은 노력이 안전 운전으로 이어진 셈이다.

국민안전처와 교통안전공단은 ‘2012년 교통사고 잦은 곳 개선 사업’을 전국 294곳에서 실시한 결과 사고와 사망자가 대폭 감소했다고 26일 밝혔다. 2011년 해당 지역의 교통사고는 2871건, 사망자는 43명이었지만 개선 이후 사고는 40.1% 감소한 1721건, 사망자는 39.5% 감소한 26명이었다.

방기성 안전처 안전정책실장은 “교통사고 잦은 곳을 꾸준히 파악해 시설물을 개선하고 안전띠 착용 생활화 등 교통문화 개선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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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혁 hyuk@donga.com·김재형·황인찬 기자

공동기획: 국민안전처·국토교통부·경찰청·교통안전공단·손해보험협회·도로교통공단·한국교통연구원·한국도로공사·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tbs교통방송

#깜빡이#방향지시등#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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