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주장 내세우는 지상파
외주사가 실제 계약-판매 맡아도… 수출 계약서에는 지상파 명의
방송노하우 ‘유출’도 지상파 주도
광고총량제 도입 등 지상파로의 광고 쏠림 현상이 우려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가 2일 만료됐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는 입법예고 기간인 지난달 중순 메인뉴스와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통해 광고 규제 완화와 한류를 연결시킨 기획 보도를 잇달아 내보냈다. 한류의 주역인 지상파가 흔들리고 있어 광고 규제 완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는 아전인수식의 해석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지상파, 한류 수출 80% 차지?
지상파가 방송 콘텐츠 수출의 80%를 차지하고 있어 한류의 주역이라는 전제부터 잘못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방송산업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지상파의 프로그램 수출액은 1억9140만 달러(약 2105억 원). 이 중 89.4%(1억7115만 달러·약 1883억 원)가 드라마인데 대부분 외주제작사가 만든다.
기획부터 수출을 염두에 두는 주중 미니시리즈(월화·수목 드라마)를 놓고 보면 더욱 뚜렷하다. 지난해 지상파가 방영한 미니시리즈 34개 중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SBS) ‘앙큼한 돌싱녀’(MBC) 등 23개 드라마는 외주제작사가 기획부터 제작까지 모두를 작업했다. 나머지는 외주제작사와 지상파가 함께 제작한 것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수출 통계에서 이 드라마들은 모두 지상파의 수출로 잡힌다. 지상파가 저작권을 갖기 때문에 제작사가 직접 해외 업체와 협상을 마쳐도 계약서는 지상파 자회사 명의로 쓴다. KBS 월화드라마 ‘힐러’를 제작한 김종학프로덕션 관계자는 “중국 동영상 업체와 직접 조건을 협상했지만 해외 유통권을 갖고 있는 KBS미디어의 명의로 계약했다”며 “해외 판매 수익을 나눠준다는 이유로 제작비가 깎였는데, 판매 수수료마저 KBS미디어에 지급했다”고 말했다. ‘지상파가 한류의 주역’이라는 주장은 저작권을 독점하는 지상파의 우월적 지위가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지적이다. ○ 내가 하면 ‘진출’, 남이 하면 ‘유출’?
지상파는 중국 자본이 한국의 스타 PD와 작가들을 스카우트하고 드라마 제작사까지 사들이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추세가 계속되면 대만처럼 제작 인력과 노하우를 중국에 빼앗겨 중국의 콘텐츠 하청기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역시 과장됐다는 의견이 많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대만 인력의 중국 유출은 중국과 동일한 언어를 쓰고 지리·문화적으로 이동이 쉬운 이유가 크다”며 “한국은 내수 시장이 대만보다 커서 같은 상황이라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중국은 완성된 프로그램뿐 아니라 포맷 수입도 하기 때문에 국내 제작의 노하우가 중국으로 이전되는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사실 제작 노하우를 가장 많이 ‘유출’하는 것은 지상파다. 지상파는 2013년 포맷 1622편을 판매해 309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포맷이 판매되면 제작 노하우를 담은 ‘포맷 바이블’을 넘길 뿐 아니라 제작진을 현지 방송사에 파견해 출연자 섭외부터 카메라 앵글까지 세세하게 알려준다. 중국의 한국 프로그램 포맷 선호가 급증하면서 “중국에는 더 이상 팔 포맷도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프리랜서 PD 등의 중국 진출은 ‘제작 노하우 유출’이고, 지상파의 포맷 판매는 ‘진출’이라는 논리는 이율배반이라는 것이다.
○ 중국에 맞서려면 지상파 키워야?
“중국 자본과 맞서야 하니 지상파를 더욱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시대착오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지상파의 과점 상황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국내의 다양한 콘텐츠 생산자를 희생시키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는 지상파가 아닌 인터넷 기반 동영상 사업자 등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콘텐츠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동영상 서비스 아마존 프라임 등이 드라마를 자체 제작해 골든글로브 상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2013년 외주제작사의 콘텐츠 직접 수출액이 2164만 달러(약 238억 원)로 전년보다 28.6%,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수출액도 4803만 달러(약 528억 원)로 전년 대비 83.3% 늘었다.
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다양한 콘텐츠 생산자들이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게 최근의 시장 흐름”이라며 “지상파도 경영 시스템을 개선하고 전체 콘텐츠 업계와의 공생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