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백약(百藥)이 무효인 걸까. 경남에서 학교폭력이 빈발하면서 교육당국을 바라보는 학부모 시선이 차갑다. 경남에서는 지난해 봄 진주외고 교내 폭력으로 학생 2명이 잇따라 숨져 파문이 일었다. 비슷한 시기에 터진 세월호 참사와 맞물리면서 성난 엄마들은 6·4지방선거 때 진보 성향의 박종훈 후보를 선택했다. 그가 내건 ‘아이가 먼저다’라는 구호가 먹힌 셈이다.
‘박종훈 교육감 체제’가 출범한 지 8개월. 교육 현장에서는 “과거와 별 차이가 없다”는 말들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학교폭력도 되레 늘어나는 추세다. 늑장보고와 은폐도 여전하다. 최근 창원시 진해구의 한 사립중학교에서 발생한 ‘학폭(學暴)’ 장면이 방송을 탔다. 경위야 어떻든 친구가 얻어맞는 상황을 촬영 또는 방관하는 풍토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판은 박 교육감에게 쏟아진다. 실망한 학부모들은 “그동안 무얼 했느냐”고 묻는다. 박 교육감은 지난해 9월 도의회에서 “교육감 직속 학교폭력 예방기구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5개월째 구체적인 소식이 없다. ‘무지개센터’를 출범시킬 예정이라는 설명이 있었지만 어정쩡한 이름만큼이나 기구의 성격, 구성, 담당 업무 등은 안갯속이다. 이미 가동 중인 부서와 유사해 옥상옥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있다. 박 교육감은 지난해 10월 학생 500명을 모아 놓고 학교폭력 근절 원탁 대토론회를 열었다. 당시 일부에서는 “겉만 번지르르한 전시성 행사보다는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사실 박 교육감이 중요한 학폭 사안을 대충 마무리할 때부터 ‘재발’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지난해 8월 공립대안중학교인 ‘꿈키움학교’에서 터졌던 교사의 학생폭행 사건. 박 교육감은 학부모와 교사의 손을 잡고 서둘러 갈등을 봉합했다. 현지에 나간 박 교육감은 교장공모제 도입, 꿈키움학교와 생활부적응 학생 위탁교육기관인 진산학생교육원 분리 등을 약속했다. 그렇게 해놓고 이제 와선 “규정상 어렵다”는 태도다. 약속을 못 지키든, 못 지킬 약속을 했든 그의 책임이다.
이에 앞서 도교육청은 진주외고가 10여 건의 학폭 사건을 보고하지 않은 사실을 파악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특히 ‘진주외고를 특목고 또는 자립형사립고로 오인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교명 변경을 권고만 한 뒤 손을 놨다.
청소년폭력예방 재단인 ‘푸른나무 청예단’ 김미연 경남지부장은 “학폭을 축소 은폐하려는 의식이 상존하고 실태조사도 외부에 맡기지 않는 등 폐쇄성이 짙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교육감의 애매한 리더십과 구성원들의 무사안일이 겹친 탓”이라고 진단했다. 박 교육감은 3일 “학폭에 대해 즉각적이고 단호한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켜볼 일이다. 그는 학폭이라는 내우(內優)와 무상급식 중단 위기라는 외환(外患)에 직면했다. 이를 헤쳐 나가기 위해선 전열을 가다듬고 구성원들을 다잡아야 한다. 그 첫걸음은 인사의 공정성 확보와 모든 사무처리의 원칙 준수다. 여기서부터 잡음이 생기면 영(令)을 세우기 어렵고, 영이 무너지면 죽도 밥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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