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제주 제주시 한림읍의 한 목장. 1, 2살 예비 경주마들이 여유롭게 목장을 거닐고 있었다. 그러나 이 광경을 지켜보는 목장주 이모 씨(61)의 속은 타들어갔다. 새로운 주인을 만나 과천이나 부산 경마장을 누벼야 할 경주마들이 이곳에서 꼬박꼬박 사료비와 인건비를 축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마주들이 새로운 경주마를 찾기 위해 목장을 방문할 때인데 경주마 거래가 끊기면서 고정적인 지출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다. 빚 때문에 파산 직전에 몰렸다”고 말했다.
제주지역에는 지난해 9월 이후 경주마를 사려는 발길이 뚝 끊겼다. 한국마사회가 경마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올해 2월부터 수입 경주마와 국내산 경주마를 함께 출전시켜 우승을 가리는 ‘산지 통합 경주’를 실시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경주마 경매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마사회 말 혈통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8일 제주육성목장에서 열린 경매장에 98마리가 상장됐지만 이 가운데 26마리만 낙찰됐다. 낙찰률은 25%로 2013년 같은 기간 낙찰률 48%에 크게 못 미친다.
제주는 연간 경주마 1200여 마리를 생산할 정도로 말 주산지이다. 경마장에서 뛰는 경주마 70% 이상을 제주에서 공급하고 있으며 경주마 생산농가 200여 곳 가운데 180여 곳이 제주에 있다. 생산자협회 측은 이들 농가가 총 1000억 원가량의 부채를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씨암말을 20마리 이상 보유한 대형목장이나 기업목장은 목장당 월 1억 원의 운영비가 필요해 사정은 더 심각하다. 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는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 경주 편성은 생산농가의 도산으로 이어진다. 능력 차이가 뚜렷한 외국산마와 국산마를 통합하겠다는 발상은 그동안 마사회가 주장했던 ‘국적 있는 경마’ 정책을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주 강모 씨(47)는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외국산 경주마를 수입해 경마에 투입하면 승산이 높다. 현재로서는 국내산의 실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외국산 경주마를 사들여오는 재력가형 마주만이 혜택을 보게 됐다. 당초 국내 경쟁력을 갖춘 뒤 2022년부터 산지 통합 경주를 시행할 예정이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앞당겨졌다. 제주가 국내 제1호 말 산업특구로 지정됐는데 유명무실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주마생산자협회의 반발이 이어지자 마사회 측은 일부 목장주의 경주마 생산자 자격을 박탈하고 마주 자격도 취소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마사회가 제시한 경마 혁신안에는 외국산 경주마에 대한 수입가격 제한을 현행 3만 달러에서 5만 달러로 완화해 국내 경마를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마사회 관계자는 “전면적인 통합 경주가 아니라 1, 2군 경마에서 우선 시행한다. 국내산 경주마가 통합 경주에서 입상하면 추가 인센티브를 주고 국내산 한정 경주에 대해서는 상금을 증액 편성한다. 생산장려금을 늘려 생산농가 등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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