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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주제는 ‘약속’]<27>식당-호텔 ‘예약부도’ 이제 그만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평일 오전 11시 50분. 서울 광화문에서 일식집을 하는 유모 씨(45)에게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손님들을 자리로 안내하고 주문받고, ‘빈자리’에 앉겠다는 손님들을 돌려보내느라 입씨름도 해야 한다. “아, 저 빈자리는 예약석입니다. 죄송하지만 자리가 없어요”라며 돌려보내고 나면 20여 분이 흘러간다.
예약 장부를 살펴본다. 각각 5명, 3명 예약한 손님 두 팀이 12시 반까지 오지 않았다. 유 씨가 미간을 좁히며 예약한 손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지만 통화 연결음만 한없이 흐른다. “늘 있는 일이죠 뭐.” 예약만 해 놓고 안 오는 사람 열 중 아홉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7년간 가게를 운영하며 깨친 법칙이다. “전화를 받아도 ‘아 미안해요. 취손데 깜박했어요’라고 해 버리면 뭐…할 말이 없죠. 힘만 빠지고.”
이 식당에서 가장 저렴한 메뉴는 1만3000원. 8명이면 10만 원이 넘는다. 거기에 자리가 없어 돌려보낸 손님만 10여 명. 하루에 두어 팀은 꼭 이런 식으로 잠수를 탄다. “12시 전에 못 온다는 전화 한 통 해주면 이렇게 속상할 일은 없는데….” 식당가에서 이런 예약 부도(No-Show)는 일상이다.
예약 부도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한 호텔 예약부 직원 김모 씨(29)도 예약해 놓고 안 나타나는 손님에 대한 대책에 골머리를 앓는다. “취소 수수료를 물리겠다고 전화하면 본인이 아닌 척하는 사람부터 ‘서비스업에서 그 정도도 안 해주느냐’고 되레 항의하는 사람, 아예 예약할 때 기입한 신용카드를 정지시키는 사람까지 다양하죠. 끝까지 싸워 봤자 우리는 남는 게 없죠.”
이런 예약 부도의 피해는 결국 손님에게 돌아온다. 일부 레스토랑은 아예 예약을 받지 않기도 하고, 공연계에선 초대권을 좌석의 1.5∼2배로 발행하기도 한다. 초대권을 받아도 오지 않을 때가 빈번해서다. 이런 초대권 남발은 2006년 소프라노 바버라 헨드릭스 공연 때 관객들이 몰렸다 수백 명이 되돌아가는 해프닝을 빚었다.
예약 부도를 줄이기 위해 공연업계와 항공사, 대형 숙박업소는 예약 취소 시 환불 수수료를 받고 있다. 예약 시 티켓 값을 완전히 지불하는 시스템인 공연업계는 공연 당일 나타나지 않는 일은 거의 없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공연을 보기 위해 경쟁적으로 예매를 하고 돈을 지불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외식업계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강남의 한 한식당 주인 최모 씨(44)도 몇 년 전 연말 회식 예약에선 10만∼20만 원 정도 선입금을 받았다. “모두 ‘방을 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라 선입금을 받았더니 예약 펑크 날 일도 없었고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도 바로 왔어요.”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입소문을 타는 업종이라 ‘주인이 건방지다’ ‘손님 불편하게 한다’고 소문이 나 접었죠.”
사업주의 노력과는 별개로, 손님이 바뀌고 예약 문화가 사회적 예절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지적은 여기서 나온다. 예약도 분명한 약속이다. 배려와 예의로 생각해야지 손님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그건 분명한 갑질이다. 이런 약속을 저버리면 결국 비용 부담이란 부메랑이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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