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제4심포지엄: 무한경쟁에서 개성 존중의 시대로
인촌기념회-동아일보-채널A-고려대 공동주최
교육개혁, 실현 가능한 대안은…
《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는 깊고도 넓다. 인촌기념회, 동아일보, 채널A, 고려대가 10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를 주제로 공동 주최한 마지막 심포지엄은 교육개혁을 논의했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 바탕에 깔린 것은 우리 교육을 더이상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었다. 》
석학들의 5대 제언
① 성적 줄세우기 그만깵 내신-수능 절대평가로 바꾸자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성적순으로 등급을 나누는 현행 상대평가 방식의 고교 내신 등급제와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상대평가가 무한 경쟁을 유발하고 창의·인성교육을 고사시켜 결과적으로 공교육을 무너뜨린다는 지적이었다. 참석자들은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내신과 수능을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태제 이화여대 교수는 “상대평가는 경쟁을 당연한 논리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교육 이념인 홍익인간의 양성을 방해하고 있다”며 “선진국에서는 상대평가 점수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절대평가 방식으로 학생의 수준을 명시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 교수는 “수능의 EBS 교재 연계 비율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EBS 연계율을 70%로 높이다보니 고교에서 교과서를 멀리하고 EBS 방송을 틀어놓고 수업을 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신태균 삼성인력개발원 부원장은 “현재 우리는 시간 공간 인간이 급변하는 ‘3간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며 “한국 교육은 전문가를 만드는 데는 강력하지만 리더를 길러내는 데는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는 리더의 제일 덕목인 인성과 창의성을 보는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창동 양정고 교장은 고교 내신에 대해 “학교교육의 목표는 학생을 변별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향상하는 데 있는 만큼 절대평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수능에 대해서는 “국가시험은 사교육 없이도 치를 수 있는 보편적 시험이어야 하고 누구나 언제든 응시할 수 있는 제도로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수능 대비를 위한 문제풀이 공부와 그 결과에 따른 줄 세우기 방식이 학생의 학습 부담과 스트레스,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으로 나타난다”며 “내신 절대평가 등을 토대로 학생부 중심의 대입제도를 설계하고 수능의 영향력을 축소해나가는 것이 학교교육을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② 대학에 자율 주되 책임도 더 지게
심포지엄 참석자들은 산재한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이 일선 교육 현장에 군림하면서도 자신들이 공교육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구체적으로는 자율성을 주되 책무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민경찬 연세대 교수는 “대학은 각자 설정한 인재상과 연계해 ‘우수학생’의 정의를 새롭게 제시해야 한다”며 “대학이 하나의 잣대가 아닌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특성을 가진 학생을 뽑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정부는 획일적으로 대학을 규제하지 말고 대학은 자체적으로 특성화를 통해 성적에 따른 서열화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 교수는 “대학마다 설립 목적과 발전 방향이 다른 만큼 정부는 대학이 고유 목적에 부합하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줘야 한다”며 “그 대신 대학은 막중한 책임을 갖고 투명한 신입생 선발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병영 전 교육부 장관은 “명문대가 입학사정관제를 자율적으로 앞장서서 했다면 큰 개혁이 됐을 텐데 정부가 강요하는 식으로 시행하니까 제도가 왜곡됐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③ ‘수월성vs평등성’교육 이분법 탈피를
‘이것 아니면 저것 식’으로 양자택일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수월성과 형평성을 모두 추구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안 전 장관은 “수월성과 형평성은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의 이념적 과제가 아니라 어떤 정책 혼합이 국리민복에 도움이 되고 투자효과성이 높으며 실현 가능한가에 대해 합리적으로 토론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학습자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키워 교육경쟁력을 강화해야 하지만, 교육 기회의 보편화와 교육 소외 극복을 위해서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성희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수월성과 평등성은 교육에서 추구해야 할 중요한 두 개의 가치로 이는 서로 충돌하는 게 아니다”라며 “구분되어야 할 것은 엘리트와 일반인 교육”이라고 진단했다. 정 논설위원은 “이제는 엘리트 교육을 수월성으로 포장해 들고 나오지 말고 정면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정 논설위원은 “수학, 자연과학 등 이공계 분야에 뛰어난 자질과 역량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고 교육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고 평범한 보통 아이들에게까지 엄청난 학습부담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다만 엘리트 발굴에 부모의 사회 경제적 배경이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시스템을 짜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④ ‘공익-배려’시민교육 당장 시작하자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민교육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오갔다. 특히 시민들이 자발성과 책무의식을 갖는 선진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민교육을 더 늦춰서는 안 된다는 진단이 나왔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시민성은 자기 조직이나 공동체의 일들을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자발성에서 나오고, 이것이 시민사회를 구축하는 기본 윤리가 되는데 이게 한국인에게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면서 “공익에의 기여, 타인에 대한 배려심 같은 가치를 찾고 배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유급휴가를 받아 자신이 원하는 테마를 다루는 단체에서 자유로운 토론학습을 통해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독일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시민교육을 당부했다.
정광필 전 이우학교 교장도 “최근 10년 사이에 단위학교에서 스스로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서 “특히 공익을 위해 소셜펀딩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파급력도 커지고 있는데 이런 활동을 어떻게 지원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우탁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장은 시민교육을 넘어선 세계시민교육의 흐름을 소개했다. 그는 “유네스코에서 실시하는 세계시민교육은 인류 공동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대감, 책무감 등을 가질 수 있도록 통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라며 “지식 중심의 경쟁교육이 아니라 ‘다 함께 사는 교육’을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한국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⑤ 교육에 이념-정치개입 악순환 끊어야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권과 이념을 초월하는 교육 대타협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많았다. 현재 우리 교육은 이념 과잉으로 논의는 많지만 진전을 이루지 못한다는 현실 진단에 따른 것이다.
안 전 장관은 “정권마다 이념과 정치를 가지고 교육에 개입하려 하고, 교육 쟁점 하나가 부상하면 정당, 시민단체, 국민도 반으로 갈려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교육 개혁이 물 건너갔다”면서 “사회적 대타협 구조를 만들기 위해 7년 임기의 협의체를 만들기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윤 공동대표는 “국민 모두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각양각색의 해결책을 이야기할 뿐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이념적인 것이 아니라 행복하고 바람직한 인간을 지향하는 철학과 방법론을 이야기한다면 합의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한 핵심이 초당파적 위원회라고 본다”고 밝혔다.
민 교수는 “5년의 대통령 임기, 1년 안팎의 장관 임기 등 단기적인 흐름에 따라 교육이 표류하고 있다. 초당적 위원회를 통해 모두가 문제를 공유하고 교육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육 대타협 기구에 대한 참석자들의 합의는 지금의 한국 교육을 방치해서는 아이들과 국가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시점에 와 있으며, 그렇다고 단편적인 땜질식 처방으로는 문제 해결이 힘들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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