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新명인열전]“조부모의 사랑 받은 아이들, 자존감 높아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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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장 출신의 신상채 씨는 손주 4명을 키우면서 경험한 일을 담은 3권의 ‘하빠의 육아일기’를 냈다. ‘하빠’는 손자들이 그를 부르는 호칭이다. 전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경찰서장 출신의 신상채 씨는 손주 4명을 키우면서 경험한 일을 담은 3권의 ‘하빠의 육아일기’를 냈다. ‘하빠’는 손자들이 그를 부르는 호칭이다. 전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찾아오면 반갑고, 돌아갈 때는 더 반갑다.”

요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쁘고 언제나 보고 싶은 게 손주지만 막상 맡아서 오래 돌보려면 나이 들어 부실해진 허리가 견뎌 내질 못한다.

베이비붐 세대 조부모들은 은퇴 후 자신의 삶을 찾겠다는 욕구도 크다. 손주를 맡아 달라는 자식들의 요청을 거절하려고 외국으로 장기 여행을 떠나거나 엉터리 외국어를 가르친다는 농담까지 나오는 세상이다.

그러나 신상채 씨(64)는 은퇴 후의 삶을 오롯이 네 명의 손주를 키우는 데 바쳤고 육아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이제 육아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대접받는다. 그의 전직은 경찰서장이다.

○ 육아일기 펴낸 전직 경찰서장

‘하빠’.

2010년 2월, 태어난 지 넉 달쯤 된 손자의 입에서 처음 튀어나온 말은 ‘엄마’가 아닌 ‘하빠’였다. 날만 새면 아이와 눈을 맞추던 할아버지가 들은 이 한마디는 그의 은퇴 후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아이가 할아버지라는 존재를 확실히 알고 부른 호칭이었다. 그의 네 손주들은 지금도 그를 ‘하빠’로 부른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정겨운 이 호칭을 생각만 해도 콧날이 시큰해지는 감동에 휩싸인다”고 말했다.

전남 고흥이 고향인 그는 경찰간부후보생 출신으로 전주 덕진 군산 익산 부안경찰서 등 전북에서 일곱 차례 경찰서장을 지내고 2009년 정년퇴직했다. 7군데 경찰서장은 요즘은 불가능한 기록이다. 바람 많이 타는 경찰 재직 시절에도 그는 강직한 성품과 소신 있는 지휘관으로 후배들이 닮고 싶어 하는 상사 중 한 명이었다.

은퇴 후 전주시 효자동 황방산 자락에 전원주택을 짓고 평화로운 노년을 꿈꾸던 그에게 6년 전 첫 손자가 태어났다. 연이어 외손주도 줄줄이 태어나 몇 년 사이에 손주가 넷이나 생겼다. 맞벌이하는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딸의 형편을 뻔히 알면서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퇴직 후 여러 자리를 제의받았지만 모두 뿌리쳤다. 전원주택이어서 아이들 키우기에도 마침맞았다. 그러나 아이 키우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밤에 아프기라도 하면 꼬박 밤을 새워야 했고 손주들에게 매여 밖에 놀러갈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도 막상 그 천사 같은 얼굴을 보면 허리 통증도 씻은 듯이 사라졌고 잠시만 떨어져도 먼저 보고 싶었다. 퇴직 후 딱 한 번 처제의 초청으로 외국(캐나다)에 갔지만 손주들이 눈에 밟혀 서둘러 돌아오고 말았다.

“나도 젊은 시절 그랬지만 부모는 너무 조급해요. 그런데 조부모는 아이들을 느긋하게 바라볼 줄 알지요. 뭘 잘못해도 혼내기보다 기다려 줄 줄 알고.”

그의 손주들은 지금도 코가 막히면 “하빠, 코 빨아 줘” 하고 다가온다. 그는 손주들의 코를 자신의 입으로 빨아 준다. 어린 시절 자신의 할머니가 해 준 그대로다.

그는 이를 ‘격대(隔代) 교육’으로 설명한다. 한 세대 걸러 나타나는 격세 유전처럼 조부모가 손주를 키우는 것이 사려 깊은 교육 방식이라는 믿음이다. 조부모의 조건 없는 격려와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 자존감이 높고 인성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는 조부모 육아가 ‘살아 있는 도서관’인 노인의 지혜를 아이에게 줄 수 있고 무엇보다 ‘제 몸 부서지는 것 모르고’ 헌신하는 사랑을 주면 적어도 아이가 크게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 손주 바보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을 보았으니 꽃이 지기 전에 그 예쁜 모습을 그려 두고 싶었지요.”

둘째 손녀가 태어날 무렵,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2013년 5월 첫 책이 나왔다. ‘하빠의 육아일기’. 지난해 말에 2권이 출간됐고 올봄이면 세 번째 책이 나온다.

책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매우 많다는 방증이다. “조선시대 ‘양아록(養兒錄)’ 이후 400년 만에 만나는 할아버지의 육아일기”라는 평도 받았다.

대학이나 YWCA 등 여성단체에서 초청 강연도 줄을 이었다.

그는 이 책이 손주들과 할아버지의 합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손주들이 끊임없이 내뱉는 엉뚱한 말과 귀여운 몸짓은 할아버지에게 늘 새로운 경이로움으로 다가오고, 할아버지는 그걸 글로 옮기느라 아이들의 뒤를 즐겁고 숨 가쁘게 쫓아다녀야 한다.

사실 그는 육아일기를 펴내기 전부터 글쓰기를 즐겼다. 2003년 문예사조 수필 부문 신인상을 받았고 2008년부터 지금까지 전국경찰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힘은 들지만 손주들이 가장 진솔한 글감을 그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그는 손주 키우기를 여생의 소명으로 여긴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고 아이의 말과 몸짓에서 비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낀다. 그는 지금도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원에 가는 오전에는 헬스클럽에 가서 몸을 만든다. 자신의 몸이 건강해야 손주들을 잘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무슨 육아법이니 뭐니 해도 그냥 ‘사랑’이 제일인 것 같아요. 그저 손잡아 주고 체온 느끼고 놀아 주고 책 읽어 주고 그러는 거지요. 사랑을 받아 본 아이가 사랑을 베풀 줄도 아는 법이죠.”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조부모#사랑#자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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