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달라진 新풍속]
최장 9일 연휴에 엔低까지 가세… 일본 온천-동남아 휴양 여행 늘어
현지 업체 차례상 서비스까지… 대형마트 제수음식 판매 224%↑
직장인 전기훈 씨(36) 부부는 설 명절에 부모님과 세 살배기 딸을 데리고 필리핀 세부로 가족여행을 떠난다. 전 씨의 가정은 이번 명절에는 해외여행을 떠나고, 차례는 1년 중 추석에 한 번만 지내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일찌감치 이달 18일에 출발하는 4박 5일 여행 패키지를 예약한 전 씨는 “그동안 아이가 어려 해외여행을 못 다녔는데, 아버지의 퇴직 후 첫 명절을 맞아 처음으로 3대가 함께하는 여행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명절 연휴를 휴가처럼 보내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조부모와 손주세대까지 함께 해외로 떠나는 ‘3대(代) 여행족’이 늘고 있다. 명절은 가족끼리 연휴 일정을 맞추기 쉬운 데다 차례 지내는 횟수를 줄이는 등 명절 격식을 간소화하는 가정이 늘어난 이유에서다. 이들은 비행 시간이 5시간 안팎으로 짧고 온 가족이 휴양을 즐길 수 있는 동남아 지역이나, 엔화 약세로 비용 부담이 줄어든 일본 온천여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16일 모두투어에 따르면 설 연휴 여행상품 예약은 지난해 설과 비교해 55.3% 늘었다. 이 가운데 전체 연령대에서 50대 이상 중년·노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28.5%에서 올해는 32.9%로 증가했다. 온라인 여행 예매사이트인 인터파크투어에도 50대 이상 부모세대와 함께 가족 패키지 상품을 예약한 이들은 지난해 설 연휴와 비교해 24% 증가했다.
지역별 예약 현황을 살펴보면 가족여행지로 선호하는 근거리 여행 상품의 예약률 증가세가 뚜렷하다. 이번 설 기간 하나투어의 동남아 여행상품 예약은 지난해보다 37.2% 늘어났고 중국은 45.8%, 일본은 14.3% 늘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현지 여행가이드 업체에서 한국 가족 관광객을 대상으로 차례상을 차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명절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부들에게도 명절이 ‘일하는 날’에서 ‘쉬는 날’로 바뀌면서 제수음식을 사먹는 가정도 늘어나는 추세다. 주부 김정수 씨(49) 가정은 2년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명절 음식의 절반 이상을 사다가 먹는다. 김 씨는 “집 근처 재래시장에서 동태전이나 산적 등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사와 데워 먹고, 떡국 등만 집에서 직접 끓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대형마트에서 사서 데워 먹는 명절 음식도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고 있다. 이마트의 자체 브랜드 상품인 ‘피코크’의 잡채 모둠전 산적 등 제수음식 제품은 최근 11일 동안(2월 5∼15일) 전국 매장에서 4억 원어치가 넘게 팔려 나갔다. 지난해 같은 기간(설 4∼13일 전)과 비교하면 224.1% 증가했다. 이마트는 주부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이번 설에는 수정과와 완자 등 제품 구색을 늘렸다.
명절에 제수음식을 사먹거나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에 대해 이순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차례나 제사 등을 통해 뿌리 깊은 가문의 의식을 중시하던 풍조가 약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가족문화를 지켜 나가는 것이 현대인에게는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 됐다”며 “특히 여성의 사회 진출로 인해 공동체보다 개인의 삶이 중시되고, 남성들도 쉬면서 보내는 명절에 동조하면서 명절을 맞는 전반적 분위기가 달라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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