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3학년에 올라가는 최모 군(18)은 설을 앞두고 벌어진 부모님의 부부싸움에 난감했다. 최 군의 아버지는 매년 그랬듯 온 가족이 함께 고향에 내려가 설을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성적에 압박을 느낀 최 군은 명절에도 조용히 공부를 하고 싶었다. 마침 학원에서 ‘설 명절 특강’이 열린다는 소식도 들렸다. 최 군은 어머니께 이런 생각을 이야기했고 어머니도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지만 남편은 언성을 높이며 반대했다. 대화는 부부싸움으로 변했고 화난 남편이 “가기 싫다면 됐다. 나만 갔다 오겠다!”고 소리 지른 뒤 집안에는 대화가 끊겼다.
며느리들의 명절증후군만큼이나 고3 수험생의 귀성 문제는 가족 사이에서 미묘하고 어려운 문제다. 동아일보는 이에 대한 의견을 알아보기 위해 13일 동아닷컴 ‘핫 이슈-당신의 의견은’ 코너를 통해 온라인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17일까지 진행된 투표 결과에서 ‘고3이라도 명절에는 친척과 함께 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57%(585명)로 ‘명절에도 공부를 계속 해야 한다’는 의견(43%·443명)보다 많았다.
누리꾼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귀성을 찬성하는 한 누리꾼은 “고3도 사람인데 설날 정도는 좀 쉬어야 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반면 귀성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고2 추석부터 시골에 안 내려갔다”며 “하루라도 펜을 놓으면 뭔가 뒤처질 것 같은 두려움과 압박감이 든다”고 말했다.
아예 선택권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그래도 시골에 갈지 말지 선택권이 있는 고3은 낫지, 우리집은 큰집이라 명절만 되면 친척들이 몰려와 매번 도서관으로 피하는 신세였다”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당사자인 예비 고3들은 공부보다는 눈치 없는 친척들의 잔소리를 더 걱정했다. 가뜩이나 예민한데 “좋은 대학 가야지” “모의고사 성적은 잘 나오고?” “누구네 집 자식은 명문대 갔다더라” 등의 부담스러운 말을 쏟아내기 때문. 특히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 일명 ‘스카이’(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로 통하는 명문대생이 있으면 더욱 죽을 맛이다. 한 누리꾼은 “지난해 추석 때 시골에 갔는데 마침 그 자리에 온 사촌 오빠가 서울대생이었다”며 “가시방석 같아서 이번 설에는 죽어도 안 내려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미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 중에는 “수능을 치른 또래 사촌이 있는데 먼 친척들이 대놓고 대입 결과를 물어보며 비교할까 봐 겁난다”는 말도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