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목사(牧使)를 지냈던 14대조 할아버지가 저를 이곳으로 이끌어주신 것 같아요. 조상이 맺어준 인연이라 생각하고 지역 상생협력사업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432년 전 조상이 목민관으로 부임해 선정을 베풀었던 전남 나주에서 후손이 관아 등 유적지를 가꾸고 보존하는 일을 맡아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광주전남혁신도시로 이전한 한국전력공사 김시호 영업본부장(56). 그는 한국전력의 지역 상생협력사업 중 하나인 원도심 역사유적지 배전설비를 땅속에 묻는 지중화 사업의 총괄 책임자다.
김 본부장의 선조는 1583년 8월부터 3년간 전라도 도읍인 나주목을 다스렸던 학봉 김성일 목사(1538∼1593)다.
김 목사는 재임 기간 나주지역 최초의 사액서원인 대곡서원을 금성산 기슭에 세워 김굉필 조광조 이황 등을 제향하고 선비들을 학문에 전념하게 했다. 나주목 관아 정문인 정수루에 백성의 억울함을 듣는 신문고를 설치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으나 나주 사직단(社稷壇) 화재에 책임을 지고 1586년 사직했다. 2년 후 통신부사로 일본에 파견됐다 돌아와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파직되기도 했다. 그는 류성룡 등의 건의로 1592년 경상도초유사로 임명돼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으고 피폐해진 경상도의 행정을 바로잡는 데 기여했다.
나주시는 목사 시절 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2008년 목사 관아였던 내아에 김성일의 이름을 붙인 방을 한옥 체험장으로 꾸며 개방하고 있다. 관아 정문에 설치됐던 신문고는 제야 때 북을 치는 ‘정수루 북 두드림 제야행사’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김 본부장은 “조상의 손때가 묻은 관아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기회가 되면 일일 명예시장도 하고 싶다”며 웃었다.
김 본부장이 벌이는 사업은 총 60억 원을 들여 금성관과 역사유적지가 많은 중앙로 주변에 내년 9월까지 첨단공법으로 3가지 모델의 지중화 특화거리(3.9km)를 조성하는 것이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그는 “지금껏 나주에 온 적이 없는데 한전이 이전하면서 선조와 연을 잇게 됐다”며 “조상의 얼이 배어 있던 거리를 보존하고 정비하는 사업을 맡아 뿌듯하기도 하지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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