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언어 조기교육 슈퍼맘… 이래도 될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6일 03시 00분


3, 4세부터 英-中-日-佛-스페인어 동시 교육… 러시아-아랍어까지
스터디그룹서 정보 나누는 그녀들

영유아 자녀에게 다언어 조기교육을 하는 엄마들이 인터넷 카페를 통해 공유하는 자녀들의 학습결과표, 공부하는 사진, 외국어로 말하는 동영상들. 네이버 카페 캡처
영유아 자녀에게 다언어 조기교육을 하는 엄마들이 인터넷 카페를 통해 공유하는 자녀들의 학습결과표, 공부하는 사진, 외국어로 말하는 동영상들. 네이버 카페 캡처
‘두 살부터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시간대별로 노출시켰어요. 21개월이 지나니까 일본어는 말문이 터졌고, 29개월부터는 일본 동요도 불렀어요. 올해 다섯 살이라 영어, 중국어, 일본어 순으로 노출시키는 중. 스페인어, 프랑스어 진행기도 곧 올리겠음.’(5세 여아를 둔 엄마)

‘아들에게 14개월 때부터 본격적으로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노출. 21개월부터 영어 단어로 말문 대폭발. 저를 극성 엄마로 보는 분들도 있는데 한숨만 나옵니다. 나중에 분명 후회하면서 엄청 부러워하시겠죠?’(32개월 아들을 둔 엄마)

○ 3, 4세 아이에게 러시아어로 노래까지

유치원 입학 전 자녀를 둔 일부 엄마 사이에서 최근 ‘다(多)언어 조기교육’이 퍼지고 있다. 일명 ‘다개국어 슈퍼맘’으로 통하는 이들은 영어 조기교육을 뛰어넘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3, 4개 외국어를 동시에 가르친다. 일부 엄마는 러시아어와 아랍어 조기교육까지 시작하고 나섰다.

슈퍼맘들은 인터넷 카페에 모여 자발적으로 스터디 그룹을 만들고 노하우를 공유한다. 이들이 모이는 포털 네이버의 한 인터넷 카페 회원은 2월 현재 약 6만5000명. 이 가운데 활동이 왕성한 엄마들을 중심으로 ‘다언어 조기교육 스터디 모임’이 지난해부터 결성됐다. 올해만 10개가 넘는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의 스터디 그룹이 새로 생겼다. 모임마다 적게는 10여 명, 많게는 80∼90명이 모여 조기교육을 함께 한다.

스터디 그룹 대표를 맡은 엄마들은 학습 교재를 선정하고 학습시간표를 짠다. 팀원의 자녀 학습 진행 상황을 일일이 체크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대표를 따르는 팀원들은 노트에 요일별로 작성한 자녀 학습 내용을 사진 찍어 카페에 올린다. 엄마들은 자녀가 외국어로 동요를 부르거나 단어를 읽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한 엄마는 23개월 된 딸이 러시아어 단어를 소리 내 읽는 동영상을 올렸다. 동영상이 올라오면 다른 슈퍼맘들이 댓글로 “대단해요”, “우리 아이도 어서 저렇게 하기를” 등 응원과 부러움을 나타낸다. 다른 팀원의 자녀가 외국어를 배우는 모습을 보며 서로 교육 의지를 북돋우는 것이다.


○ 뇌 발달에 악영향, 학습-인지기능 손상 우려

이들이 극단적인 외국어 조기교육에 나서는 이유는 ‘어릴 때 조금이라도 많이 외국어를 들으면 커서도 빨리 배울 것’이란 기대 때문.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남희 동덕여대 교수(아동학과)는 외국어 조기교육 효과를 분석한 논문에서 “4세 이전에 외국어 조기교육을 한 그룹과 7세 이후에 한 그룹을 비교한 결과 4세 그룹에서 교육의 효과가 적었다”며 “반면 조기교육 과정에서 받는 과도한 스트레스가 아이들의 뇌세포 분열을 억제하고 학습과 인지기능을 손상시켰다”고 설명했다.

서유헌 서울대 의대 교수도 “0∼3세는 감정과 정서 발달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무리한 독서, 언어교육, 카드학습처럼 일방적이고 편중된 교육은 효과가 없고 오히려 정서장애로 연결되는 경향이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극단적인 외국어 조기교육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아이도 늘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간 김모 군은 3년 전 말을 더듬는 증세가 나타나 언어치료센터를 찾았다. 상담 결과 3세부터 해 온 영어 조기교육이 문제였다. 영어와 우리말을 동시에 습득하다 보니 뇌에서 혼란이 일어난 것. 치료를 시작했지만 지금도 완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올해 2세인 여아도 말더듬증으로 언어치료센터를 찾았다. 생후 12개월 이전부터 엄마가 영어, 중국어로 된 만화 DVD를 꾸준히 보여 줬는데 20개월이 지나서 말더듬증이 시작됐다. 노성임 푸른미래언어치료센터 원장은 “외국어 조기교육이 말더듬증으로 이어져 센터를 찾는 아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말더듬증은 단기간 치료가 어렵고 심리 위축, 대인기피 증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런 아이들의 엄마는 대부분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고 교육열이 높다. 노 원장은 “자녀가 조기교육 초기에 외국어를 잘한다 싶으면 주위에 내놓고 자랑하다가, 부작용 증세를 보여 문제가 심각해지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자녀의 존재를 주위에 숨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조기교육#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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