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firm&Biz]“불가능도 헤쳐가는 M&A, 그 정신이면 법률개방도 기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7일 03시 00분


김앤장 김진오 변호사, 법률시장을 말하다

《 외국 로펌이 국내에 합작법인을 세워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는 ‘3단계’ 법률시장 개방 시기가 내년으로 다가왔다. 내년 7월 유럽을 시작으로 내후년 3월에는 미국 로펌에 대한 빗장이 풀린다. 사실상 ‘완전 개방’을 앞두고 국내 로펌들이 외국 자본에 흡수되거나 입지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과연 토종 로펌이 미국, 유럽 등의 대형 로펌에 속수무책으로 시장을 내줄까. 그 답을 얻기 위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글로벌 로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온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김진오 변호사(45)를 만났다. 김 변호사는 김앤장 M&A팀을 이끌고 있는 야전사령관이다. 지난해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 거래로 기록된 벨기에 최대 맥주회사 안호이저부시인베브(AB InBev)의 오비맥주 인수(약 6조2000억 원), ADT캡스 매각(약 2조 원) 등의 자문을 맡아 성사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15년째 국내 M&A 현장에서 일해 온 김 변호사는 “적어도 M&A 분야에서 국내외 로펌 간 승부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다. 그리고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김진오 변호사가 26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김앤장 법률사무소 도서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서관 책장엔 김앤장 선배 변호사들의 손때가 묻은 법률 서적 수 천 권이 빼곡히 꽂혀있다. 홍진환기자 jean@donga.com
김진오 변호사가 26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김앤장 법률사무소 도서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서관 책장엔 김앤장 선배 변호사들의 손때가 묻은 법률 서적 수 천 권이 빼곡히 꽂혀있다. 홍진환기자 jean@donga.com
김진오 변호사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M&A 붐이 일던 2000년 초 김앤장에 합류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36회 사법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한 김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시절 김앤장에서 시보 생활을 했다. 당시 김앤장에는 정경택(63·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 신희택 변호사(63·서울대 전체수석·사법연수원 수석) 등 국내 M&A 1세대 변호사들이 밀려드는 M&A 딜과 싸우며 밤낮없이 일하고 있었다. 그때 만난 선배들은 김 변호사의 롤모델이 됐다.

“나보다 뛰어난 선배들도 하는 일인데 나도 믿고 가보자는 식이었다.”

법무관을 마치고 판검사가 되길 원하는 가족들 반대를 무릅쓰고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김 변호사가 합류할 때만 해도 한 해 김앤장에 들어오는 사법연수원 출신은 3, 4명에 불과했다.

“김앤장에 들어온 지 얼마 후 아버님 친구 분이 ‘자네, 검사 그만두고 언제 개업했냐’고 하시는데 아버님이 얼마나 아쉬우셨으면 친구 분께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 실수로 얻은 일생일대의 M&A

김앤장에 들어온 지 1년이 채 안 된 김 변호사를 M&A 전문가로 이끈 운명적인 ‘실수’가 발생한다. 당시 김앤장은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려는 GM 측의 자문을 맡아 M&A 딜을 추진하고 있었다.

“같은 층에서 GM 업무를 하시던 시니어 변호사님이 제가 1년 차인 것을 깜박하시고 이슈리스트 작성 업무를 맡기셨다.”

일반기업으로 치면 새내기 신입사원에게 과장급 일을 맡긴 격이었지만 김 변호사는 선배들에게 물어가며 어렵게 자료를 만들었고 이를 계기로 2년간 이 M&A에 매달려 2002년 말 딜의 성공에 기여할 수 있었다.

고객을 위해서라면 ‘불가능도 가능하게 해야 하는’ M&A 업무의 매력도 그때 맛봤다. GM과 대우차 사이 주계약들부터 양사 직원의 주차장 구역 배분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가 넘는 계약서는 모두 영문이었다. 당시 법원의 정리절차 일정에 맞춰 가까스로 협상이 마무리되던 차에 정리계획 인가를 하루 앞두고 법원에서 국문번역본을 달라고 요청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자문한 로펌은 김앤장에 SOS를 쳤다. 김앤장은 주니어 시니어 할 것 없이 가용한 변호사 수십 명을 모아 50여 개의 계약서를 하룻밤 만에 번역했다. 김 변호사는 “클라이언트와의 딜을 위해서 변호사들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일화”라며 웃었다.

김 변호사는 한때 후배들에게 ‘4대 천왕’으로 불렸다. 후배 다루는 게 워낙 엄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M&A 선배들은 대체로 엄하다. 송무는 재판기일이 있어서 일정에 미리 계획을 세울 수 있지만 M&A는 정말 예측불가다. 액수 조정부터 전략까지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 고객 걸음에 맞춰 최적의 어드바이스를 해야 하는 M&A 변호사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법률시장 개방은 위기 아닌 기회”

글로벌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에게 법률시장 개방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힘이 실린 목소리였다.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김앤장은 설립부터 지금까지 외국 로펌과 협업을 해왔다. 닫혀있던 시장이 갑자기 문호가 개방돼 허겁지겁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특히 M&A분야는 국내외 변호사들이 서로 먹고 뺏는 시장이 아니라 원래 협업하는 시스템이다. 법률시장 개방으로 M&A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본다.”

―외국 로펌과 경쟁이 아니라 협업 관계라는 보는 이유는….

“클라이언트들의 접근성과 시야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내기업이 외국시장에 관심이 있으면 현지로 출장가서 실사해야 하는데 만약 외국 로펌이 국내에 진출해있다면 그쪽 변호사를 통해 직접 외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 반대로 외국기업이 한국기업과 제휴하고 싶을 땐 한국에 있는 현지 로펌에 부탁하는 식으로 양방향에서 거래가 활성화될 거라고 본다.”

그는 한국의 법률시장 개방은 일본 등 앞서 시장을 개방한 나라와는 사정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외국 로펌에 일본계 미국 변호사는 별로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한국계 미국인이나 한국 대학을 나와서 유학 온 미국 변호사들이 부지기수다. 그들은 소속만 외국 로펌일 뿐 똑같이 한국말을 쓰고 이미 홍콩 등에서 한국 관련 일을 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오피스 주소만 바뀌게 되는 것이다.”

―해외 고객들에게 김앤장의 위상은….

“서구 고객들은 그 나라에서 받는 베스트 프랙티스를 한국에서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후배들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것이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많은 분야에서 앞서있지만 적어도 로펌 프랙티스는 한국이 자기들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배들의 노력으로 일본 로펌들보다 한국 로펌이 앞서게 됐는데 후배 법조인으로서 어깨가 무겁다.”

그의 말처럼 일본 4대 로펌 가운데 하나인 ‘나가시마 오노 쓰네마쓰’의 창업자 나가시마 변호사는 1999년 12월 일본변호사연맹 기관지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 로펌이 김앤장에 뒤지고 있다. 김앤장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앤장 M&A팀만의 강점이라면….

“딜에 따라 제일 성공적으로 이끌수 있는 전담팀을 구성하는데 애를 많이 쓴다. 어느 산업분야인지, 고객은 왜 딜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타깃 회사의 주요 사업과 자산이 무엇인지, 고객은 무슨 이슈를 중요하게 보는지 등등 첫 설계부터 신중히 접근하기 때문이다. M&A는 투자은행, 회계법인, 컨설팅 업체 등 다른 전문기관과도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김앤장이 쌓아온 오랜 네트워크도 무기가 된다.”

그는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M&A로 지난해 7월 성사된 두산그룹의 미국 클리어에지파워 인수 건을 꼽았다.

“인수전에 20개 이상의 기업이 뛰어들었지만 미국 파산법원에 가장 먼저 회생 계획을 냈다. 현지 로펌과의 유기적인 협력, 순간적인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김앤장만의 강점이 드러난 딜이었다.”

―M&A를 하려는 국내 기업에게 조언을 하자면?

“국내기업은 좀더 신속한 의사결정과 모험이 필요하다. M&A는 은행예금처럼 모든 건에서 조금씩 버는 것이 아니라 어떤 건에서 손실이 있어도 한 건 크게 대박도 터뜨리고 해서 전체적으로 이익을 얻는 식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유무형의 효과도 많다. 그건 사모펀드도 마찬가지다. 합리적인 기준과 꾸준한 투자를 통해 중간에 마이너스 내는 딜이 있어도 이따금 큰 성과를 일궈 한 단계 성장한다.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세계 속 ‘트러스티드 어드바이저’로 도약

김 변호사는 김앤장의 새로운 모토로 ‘트러스티드 어드바이저(trusted advisor·신뢰받는 자문가)’를 내세웠다. 단순히 법률적, 기술적으로 고객을 대하는 것을 넘어 정말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관계가 설정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 믿음 속엔 김앤장을 향한 대한민국 사회의 기대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사실 김앤장은 우리나라 경제와 궤를 같이하며 성장했다. 기업도 니즈도 없는데 단순히 변호사만 노력한다고 세계적인 로펌이 될 수는 없다. 늘어나는 외국인 투자,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 등 한국 경제 성장에 발맞춘 서비스를 하다보니 덩달아 로펌의 경쟁력도 커진 것이다.”

그는 로펌이 한국 경제 성장의 덕을 본 케이스로 2007년 두산인프라코어가 미국 건설장비업체인 밥캣을 인수한 딜을 꼽았다. 그전까지 김앤장을 포함한 국내 로펌은 글로벌 M&A에서 ‘리드 카운슬(lead counsel·주도적으로 자문하는 변호사)’ 역할을 맡은 적이 없다. 외국 기업들은 한국 로펌을 단지 현지 제휴사 정도로 활용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인 두산이 매수자가 되자 국내 로펌인 김앤장이 주관 자문 로펌이 되어 해외 유수의 로펌을 현지 파트너로 삼아 함께 일을 했다. 밥캣은 지난해 3조7000억 원대의 매출과 3000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등 두산의 효자 계열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프로야구 팬인 김 변호사에게 M&A를 스포츠에 비유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변호사는 송무가 ‘고독한 파이터’라면 M&A는 ‘팀이 함께 싸우는 야구’라고 했다.

“송무는 피고인 또는 대리인을 위해 적을 무찔러야 하는 투사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하지만 M&A는 궁극적으로 고객의 비즈니스가 잘돼야 하기 때문에 승리라는 결과보다 득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야구에서 팀을 4번 타자로만 구성할 수 없는 것처럼 M&A의 성패는 다양한 전문가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지휘력과 팀워크가 좌우한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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