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나를 마약범으로 몬 사채왕 눈감은 판사-경찰 용서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7일 03시 00분


‘뒷돈’ 받은 최민호 前판사 관련 피해자, 檢에 재수사 탄원
최前판사, 공판준비기일 연기 신청… 직업 묻자 “공무원이었습니다”

“경찰관을 매수해 죄 없는 사람 구속하고 판사는 매수당해 사건 로비를 하고… 억울해도 너무 억울합니다.”

‘명동 사채왕’ 최모 씨(61·구속)가 최민호 전 판사(43·구속)에게 2억여 원의 금품을 주고 무마하려 했던 사건의 피해자 신모 씨(55)가 서울중앙지검에 탄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신 씨는 탄원서에서 당시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했다.

탄원서에서 신 씨는 2001년 도박으로 8억 원을 날린 뒤 최 씨의 측근에게서 “당신이 참여한 도박판은 최 씨가 꾸민 사기도박이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신 씨가 이를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최 씨가 신 씨를 다방으로 불러냈다. 최 씨는 이 자리에 소위 ‘바람잡이’를 데리고 나왔고 몸싸움을 유도한 뒤 신 씨의 주머니에 필로폰 0.3g을 몰래 집어넣었다. 경찰 조사에서 수차례 억울함을 표했지만 결국 마약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게 신 씨의 얘기다. 신 씨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당시 출동한 경찰이 나도 모르던 마약을 찾아내더라”며 “당시 수사를 담당한 경찰서 강력계 형사도 한패였던 것 같다. (그 형사가) 최 씨와 통화도 하더라”고 주장했다.

묻힐 뻔했던 사건은 2008년 최 씨 측근이 다른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다 “사채왕이 시켜 소위 ‘마약 던지기 수법’으로 신 씨를 희생시켰다”고 진술을 하면서 검찰이 재수사에 나섰다. 수사 끝에 최 씨가 재판에 넘겨지자 최 씨 측은 “10억 원을 주겠다”며 허위 진술을 요구했지만 신 씨는 거절했다. 결국 최 씨는 당시 수사를 맡은 김모 검사(42)의 사법연수원 및 대학 동기였던 최 전 판사에게 금품 로비를 했다. 최 씨는 마약 관련 사건이었지만 불구속 기소됐고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신 씨는 “이런 공작이 있었는지 상상도 못했다. 수없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다들 나를 범인으로 몰았다”며 “사채왕 최 씨보다 함께 범행을 꾸민 수사기관이 더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신 씨는 자신의 유죄 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한편 최 씨로부터 사건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 전 판사는 26일 첫 공판 준비기일에 출석해 “상태가 안정되지 않았다”며 기일 연기를 신청했다. 녹색 수의 차림으로 피고인석에 선 최 전 판사는 직업을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작은 목소리로 “공무원이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최 전 판사는 지난달 사표를 낸 뒤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의 정직 1년 징계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25일 퇴직 처리된 상태였다. 재판부는 재차 “현재는 (공무원이) 아니냐”고 물어 “어제 퇴직했다”는 답을 들은 뒤 최 전 판사의 직업을 ‘무직’으로 기재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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