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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주제는 ‘정직’]<38>근무시간 부풀리기 이제 그만
“솔직히 그게 죄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구청공무원 A 씨(29)는 최근까지 일이 없어도 매주 토요일 사무실에 출근했다. A 씨가 토요일에 2∼3시간 동안 하는 일은 각종 고지서 출력. A 씨 혼자 각종 취득세 고지서 발급업무를 하기 때문에 출력해야 하는 고지서 양은 상당한 편이다. 하지만 A 씨가 토요일마다 출근 하는 것은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초과근무수당 때문이다. 고지서가 출력이 되는 동안 A 씨는 인터넷 쇼핑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A 씨가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초과근무수당을 허위로 수령한 것은 아니다. 입사 초기에는 실제로 일이 많고 익숙하지 않아 평일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 근무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일이 손에 붙으면서 요령이 생겼다. 토요일 약속시간 전에 잠시 사무실에 들러 출력 버튼만 눌러 놓고 나가면 출력이 진행되는 시간이 그대로 근무 시간이 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밖에 안 걸리는 곳에 사는 A 씨는 평일 저녁 야근도 이런 식으로 한두 시간씩 전용한다. A 씨가 이렇게 하지도 않은 야근과 휴일 근무로 챙기는 초과수당은 매달 30만 원 정도다. A 씨는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닌데 일에 요령이 붙으면서 시간이 단축되다 보니 꾀가 생긴 것 같다”며 “초과근무수당을 받지 않으면 임금이 지나치게 적다는 생각도 편법을 쓰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바늘도둑이었지만 소도둑이 되기도 한다. 지난달에는 경북 영주소방서에서 119센터장으로 근무하던 임모 씨(59)가 실리콘에 자신의 지문 본을 뜬 뒤 이를 부하직원들이 야간 근무할 때 찍도록 해 약 300만 원을 부정 수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무총리실과 경북도청 감사관실에 적발된 임 씨는 선처를 호소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공무원들의 초과근무수당 부당 수령 행위는 너무 만연해서 웬만큼 액수가 크거나 대규모로 적발되지 않으면 이야깃거리도 안 될 정도. 오죽하면 정부는 지난해 연 2조 원에 이르는 공무원 초과근무수당 개선을 위해 ‘초과근무 총량관리제’를 도입했다. 부처 간에 연간 초과근무 총량을 정하고 관리자가 이를 감독하도록 하는 제도다.
일선 지자체 등 기관에서는 자체적으로 동영상 교육 등으로 개선을 꾀하고 있지만 아직 요원한 실정이다. 최근 내부게시판에 공무원 초과근무수당 부정수령 사례를 3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소개한 충북 단양군청은 “대부분 별생각 없이 부당하게 초과근무수당을 타는 경우가 많아 이를 개선하고자 동영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초과근무수당 부당 수령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것은 조직 내 구성원 상당수가 공범이기 때문. 한 공공기관은 자신도 공범인 내부자가 큰 용기를 낸 덕에 최근에야 부정 사례가 적발됐다. 이 제보자는 “다른 동료들이 내 이름까지 대신 야근으로 기록해주는 탓에 발을 빼기 어려웠다”며 “양심의 가책 때문에 제보를 했지만 동료들에게 피해를 준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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