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주민 300명 상담… 부정수급 확인할 틈도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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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가계부 내가 챙긴다/3부 : 복지 구조조정 이렇게]
<中>전달체계, 새는 구멍 막아야

3일 오후 5시 30분 서울 용산구 청파동 주민센터에는 주민 20명이 복지 상담을 받으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마감시간까지 30분밖에 남지 않았지만 ‘희망키움통장’, 저소득층 대상 초중고 교육비, 유아 교육비 등을 신청하려는 민원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복지 담당 공무원은 “지원 대상 가정을 방문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사무실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현장에 갈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정부가 2000년대 중반부터 복지전달체계를 개선하려고 복지전담 인력을 늘렸지만 실제 상황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복지 전문가들은 “복지 규모가 커지는 속도에 비해 인력 확충이 더뎌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층에 대한 맞춤형 지원을 하거나 부정 수급자를 가려내기 힘든 현실”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정부가 복지정책을 쏟아내도 현장에서 복지 지원금이 제대로 배분되지 않는 ‘깔때기 현상’이 심화되고 복지예산이 엉뚱한 데로 흘러가 ‘나라 가계부’에 큰 부담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지원통로 막히는 ‘깔때기 현상’ 심화


지난달 7일 서울 용산구 보광동 다세대주택 단칸방에서 70대 노인이 숨진 채 발견돼 노인 고독사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이와 관련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월 49만 원을 지원받지만 병원비로 30만 원이 들어 통장 잔액이 27원에 불과했던 한 어르신의 고독한 죽음”이라며 “복지전달체계를 점검해 달라”고 정부에 주문했다.

일선에선 지금의 인력구조로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이 복지 네트워크의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계속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2011∼2014년 복지 인력을 7000명 늘린 데 이어 지난해부터 2017년까지 6000명을 더 현장에 배치하기로 했다. 이 같은 복지공무원 확대 프로젝트에 따라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복지인력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3만170명으로 2010년 말(2만2843명)에 비해 7327명 늘었다.

인력은 다소 증가했지만 복지업무 부담은 늘어난 인력만으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불어났다. 우선 복지예산 자체가 2011년 86조 원에서 올해 115조 원으로 34% 늘었다. 이에 따라 복지공무원이 상대해야 하는 지원 대상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 일례로 서울 청파동의 무상보육 지원 대상은 2013년만 해도 300명 정도였는데 올해는 819명으로 늘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체 복지사업 수도 급증했다.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담당하는 사업은 지역에 따라 50∼100개 정도다. 복지공무원 한 명이 책임져야 하는 사업 수만 20∼30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읍면동 복지 담당자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다. 복지공무원이 주민센터에서 하는 업무 비중을 보면 사무실을 찾아오는 민원인을 만나고 전화로 상담하는 일이 36.2%로 가장 높다. 현장을 찾아가 상담하는 일은 8.8%에 그친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 이들의 자산 실태를 분석하고 도움이 필요한 분야를 찾아내는 등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핵심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다. 수도권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한 사회복지사는 “최근 1주일 동안 주민 300명 정도를 만났다”며 “복지 지원 창구를 단일화한 취지는 좋지만 현장에서 소화해내기가 버겁다”고 말했다.

○ 115조 원 복지 예산 줄줄 샐 우려

복지전달체계에 구멍이 뚫리면서 부정 수급과 중복 지원 등으로 복지예산 누수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복지 부정수급은 실제 재산이 적지 않은데도 기초생활수급권자로 행세하며 복지급여를 타가거나 복지사업자가 지원금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형태로 나타난다. 정부는 지난해 복지사업 특별점검을 통해 323억 원의 부정 수급 사례를 적발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부정 수급액은 더 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개인들이 부정 수급하는 문제는 담당 공무원이 각 가정을 방문해 신고한 자산명세와 실제 자산실태를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걸러내야 하는데 역시 인력 문제가 걸림돌이다. 한 사회복지사는 “중앙 부처에서 새로운 사업을 만든 뒤 수급 기준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자료를 PDF파일로 홈페이지에 띄우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식으로는 누가 부정 수급자인지 가려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복지사업자들의 부정 수급은 누수액이 큰 데다 조직적으로 이뤄져 적발하기가 더 어렵다. 일례로 광주의 복지기관과 지역아동센터는 2013년 저소득층 아동과 노인 559명에게 지급해야 할 국고 보조금 2억 원을 가로챘다가 지난달 경찰에 적발됐다.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 것처럼 서류를 정교하게 꾸몄기 때문에 행정기관이 부정 수급 사실을 금방 알아채기 힘들었다.

복지 전문가들은 전달체계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려면 현재 3만여 명인 복지공무원 수를 중장기에 걸쳐 4만∼5만 명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고 본다. 이준영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당분간은 공공과 민간 부문 간 협업 체계를 통해 복지업무를 분담하는 한편으로 주민센터에서 일반 행정을 하던 인력을 복지업무로 돌려 업무 부담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 / 이상훈 기자
#복지 구조조정#부정수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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