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첫날인 2일 오후 2시 50분경 서울 성북구 숭례초등학교 후문 앞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 피아노학원을 마치고 나오던 3학년 박민기 군(9)이 친구들과 녹색 고무공을 튕기며 놀다가 공을 놓치고 말았다. 공은 바로 옆 도로 위까지 굴러갔다. 박 군은 양 옆을 둘러보지 않은 채 공을 쫓아 도로로 뛰어들었다. 순간 “끽” 하는 급제동 소리와 함께 파란색 1t 화물차가 박 군 앞에 멈춰 섰다. 조금만 늦게 차가 멈췄다면 사고가 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화물차 운전자는 “제대로 보고 다니라”며 박 군을 크게 꾸짖었다. 놀란 박 군은 “차가 오는 줄 전혀 몰랐다”며 “평소에도 자동차 사이를 오고가며 노는 때가 많은데 다니는 차가 많지 않아 주위를 잘 살펴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 스쿨존 내 불법 주정차 심각
스쿨존은 교통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지정된 구역으로 차량 속도를 시속 30km로 제한하고 주정차도 금지하고 있다. 스쿨존은 현재 전국적으로 1만5799곳이 설치될 만큼 활성화됐지만 실제 스쿨존 내 운전자들의 ‘반칙운전’ 행태는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본보 취재팀이 스쿨존 내 교통안전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2, 3일 서울 동대문구 성북구 강서구 일대의 스쿨존 3곳을 점검한 결과 불법 주정차 문제가 특히 심각했다.
기자가 숭례초등학교를 방문한 2일 오후에도 어린 학생들은 후문 앞 문구점 등을 가려고 수시로 도로를 넘나들었다. 천천히 걷기보다는 양 옆을 살피지 않고 뛰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스쿨존 내 주정차가 금지돼 있지만 아이를 태우러 온 학부모의 차량이나 학원 차량들이 수시로 학교 앞에 정차해 아이를 태웠다. 후문 인근에만 불법 주차된 차량 3대가 좁은 도로를 차지하고 있었다.
상황은 다른 스쿨존도 마찬가지였다.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종암초등학교 정문 앞도 기자가 찾아갔을 때 불법 주차 차량이 10대 세워져 있었다. 학교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 최모 씨(45)는 “학교 담벼락을 따라 세워진 불법 주차 차량 때문에 위험한 장면이 자주 목격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지역 스쿨존 내 불법 주정차 적발 건수는 10만1455건에 달했다.
스쿨존 내 과속도 어린이 교통안전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스쿨존 내 속도위반으로 적발된 건수는 2만4158건이다. 이는 2013년 1만5691건보다 54.0%나 증가한 수치다. 스쿨존 내에서는 시속 30km 이하로 서행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많은 운전자가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이다. ○ “천천히 운전,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해야”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돌발행동이 잦고 위험 대처 능력이 떨어져 교통사고의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2013년에만 전체 1만1728건의 어린이 교통사고가 발생해 82명이 숨지고 1만4437명이 다쳤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사고 위험도 높아진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최근 7년간(2007∼2013년) 어린이 교통사고 사상자를 분석한 결과 전체의 20.2%가 초등학교 1학년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동배 경찰청 교통안전계장은 “어린이들은 차도를 건널 때 뛰어다녀 차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운전자는 이러한 어린이의 행동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철저한 방어운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운전자들이 서행 및 주정차 금지 등 스쿨존 내 의무사항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은 스쿨존 내 주정차 문제다. 스쿨존 내 불법 주정차는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고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을 불러오는 주요인으로 꼽힌다. 학부모가 자녀를 승용차로 통학시킬 때에도 스쿨존 밖에서 내려준 뒤에 걸어서 통학하도록 해야 한다. 허억 가천대 도시계획학과 교수(어린이안전학교 대표)는 “일본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차도에서 뛰는 경우 천천히 걷는 경우보다 사고 위험이 7배 높고 주정차된 자동차 사이를 뛰어 횡단할 경우 사고 위험은 18배나 높다”며 “운전자는 스쿨존 진입 이후 불법 주정차된 차량을 발견하면 보이지 않는 곳에 아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스쿨존에서 아이들이 도로로 갑자기 뛰어들어 발생하는 돌발사고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보행자가 없더라도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하고 교통신호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또한 법정 속도인 시속 30km 이하로 서행하며 언제든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멈출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자동차 속도가 빨라지면 보행자의 인지 반응이 느려지고 정지거리도 길어져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운전자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안전시설 강화도 필요하다. 강수철 도로교통공단 박사는 “단순히 스쿨존 내 제한속도를 표시해 두기만 하면 이를 준수하는 운전자 비율이 상당히 낮다”며 “과속 방지턱 등의 실질적인 시설물이 갖춰져 있어야 운전자들이 과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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