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간 허리 못펴고…한국판 ‘모던타임스’ 車조립공 산재 인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0일 16시 47분


자동차 1대당 1분39초.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22년간 허리를 굽힌 채 일해 온 한국판 ‘모던타임스’ 근로자에게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서울고법 행정2부(부장판사 이강원)는 기아자동차 직원 김모 씨(50)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김 씨는 1989년 입사한 뒤 22년 동안 자동차 조립부에서 일해 왔다. 그는 허리에 무거운 볼트 가방을 달고 하루 10시간 씩 평균 337대의 자동차에 모터와 안전벨트 등을 부착하는 일을 반복했다. 5㎏짜리 모터를 많게는 200개까지 들어서 끼워야 했다. 작업의 특성상 허리는 늘 20~70도 정도 구부러져 있었다. 김 씨는 2012년 30㎏ 무게의 볼트 박스를 들어올리다 허리에 심한 통증을 느꼈고 이후 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이러한 작업 환경만으로 디스크가 발병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감정의의 소견에 따라 김 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김 씨의 최근 1년간 작업 동영상을 검토한 뒤 ‘인간적인’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김 씨는 허리를 구부린 채 반복동작을 함으로써 신체에 부담을 주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었다”며 “김 씨가 볼트 박스를 들어올리는 과정에서 디스크가 발병했거나 기존 증상을 악화시켰다”고 판단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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