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밭담은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리는 바람에도 끄떡없다. 그저 바람이 흐르는 방향으로 흔들거릴 뿐 웬만해선 무너지는 일이 없다. 얼기설기 쌓았지만 보리, 조 등 밭작물의 새싹을 보호하고 소나 말로부터 농산물을 지켰다. 밭담은 제주 사람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자산이다. 2013년 국가중요농업유산에 이어 지난해 4월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되는 등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제주 밭담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사업이 올해부터 본격 추진된다. 제주도는 14억 원을 들여 밭담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주민의 새로운 소득창출 자원으로 육성하는 사업을 추진한다고 12일 밝혔다. 밭담 공원을 비롯해 밭담을 주제로 한 문화 축제와 학술행사를 개최한다.
○ 제주 밭담 관광자원화 시동
제주도는 밭담의 보전 및 관리를 위해 이달에 농어업유산위원회를 구성한다. 위원회는 밭담으로 이어진 여행길을 조성하는 등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중장기 계획으로 세계농업유산 관리 협약 체결, 농업유산 직불제 도입을 추진한다. 제주도는 정부와 협의를 통해 밭담 사업을 위한 예산을 확보할 계획이다. 제주도 이우철 친환경농정과장은 “제주 밭담은 1000년에 걸쳐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포용하며 살아온 선조의 정신이 담겨있어 관광자원화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근 국가중요농어업 유산 등에 대한 지원 규정을 명문화한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예산 확보도 수월해졌다.
다양한 밭담 관련 사업을 위해 ‘제주밭담 경관보전지역’을 지정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제주도발전연구원 강승진 연구위원은 최근 심포지엄에서 밭담 경관보전지역을 핵심지역, 완충지역, 특별관리지역으로 나누는 안을 제시했다. 핵심지역은 세계자연유산 지구(거문오름용암동굴계)를 포함한 사방 5km 이내다. 완충지역은 해발 200∼600m 중간 산간 일대로 밭담 원형을 유지하고, 밭담 경관이 우수한 곳을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이다. 강 연구위원은 “농업 기계화, 도시·도로 확산 등으로 제주 밭담이 점차 훼손되고 있다. 보전지역 지정은 공모 방식과 연계해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켜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체계적인 조사가 필수
밭담은 밭을 개간하면서 캐낸 돌을 활용해 바람과 경작지를 동시에 관리하는 돌담 구조물이다. 사진작가인 강정효 씨(50)는 최근 발간한 사진집 ‘바람이 쌓은 제주돌담’에서 동국여지승람 동문감 기록을 인용해 밭담의 기원을 고려 고종 무렵으로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농경생활과 더불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땅을 개간해 밭으로 만들다 보면 돌이 나오고, 이 돌을 주변에 쌓아두면서 돌담의 시초가 됐다는 것이다. 이후 경계, 울타리, 방어 등의 용도로 돌담이 쓰였다.
밭담은 제주만의 독특한 농업 시스템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체계적인 조사연구는 아직 미흡하다. 세계농업유산 등재를 신청하면서 제주지역 돌담의 총 길이가 3만6355km이고 이 가운데 밭담이 2만2108km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표본에는 경지정리지역이 포함되는 등 문제가 있어 재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강 씨는 “연구와 활용을 위해서 체계적인 기초조사가 필수적이다. 세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울리는 돌담 관련 사업을 추진하면 독특한 유산이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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