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9시 30분경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 서울서부지법 앞. 마포구청 공무원은 철거작업자 5명과 함께 황수장 씨(57)의 구둣방을 찾았다. 이 공무원은 “죄송합니다. 관계법령에 따라 행정대집행을 시행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지게차가 5m²(약 1.5평)의 구둣방 컨테이너를 들어올린 뒤 트럭에 실었다. 황 씨가 30여 년간 일해 온 일터가 뿌리째 뽑혀나가는 데는 고작 10분이 걸렸을 뿐이다. 그는 멀어져가는 ‘일터’를 바라보며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
황 씨의 구둣방이 철거된 건 그의 재산이 2억 원을 넘었기 때문이다. 2007년 서울시의회는 구둣방과 가판대 같은 ‘보도상 영업시설물’ 운영 자격을 자산 2억 원 미만으로 제한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시설물이 너무 많고, 고액 자산가도 영업을 할 수 있다는 지적 때문. 하지만 당시 재산 기준을 2억 원으로 정한 논리는 명확하지 못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의회가 제대로 된 연구나 소득 수준 분석 없이 대충 2억 원으로 정해 통보해왔다”고 말했다. 당시 회의록에는 ‘1억 원으로 하면 대상 점포가 너무 많다’ ‘2억 원이면 대략 적당할 듯’이라는 시의원들의 발언 내용이 들어있다. 이 조례에 따라 마포구는 이날 철거된 구둣방 세 곳을 포함해 20일까지 마포구 내 구둣방과 가판대 10곳을 철거할 예정이다.
구둣방 주인들은 답답함을 호소했다. 황 씨는 “10년 전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빌라를 경매로 1억6000만 원에 샀는데 그게 값이 올랐다”며 “융자금 빼면 재산이 총 2억300만 원인데, 기준보다 300만 원 넘었다고 평생 해온 직업을 잃었다”며 하소연했다.
이날 함께 구둣방을 철거당한 정원준 씨(71)는 “1973년부터 구두를 닦아왔다. 하루도 안 쉬고 일하고, 돈을 아끼고 저축하면 지금까지 2억 원 생기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인 구둣방 주인 최모 씨(55)는 “힘겹게 2억 원을 모아도 지금 서울에서 그 돈으로 제대로 된 전셋집 하나 구하기 힘들다”며 “2억 원 모으는 순간 실업자가 되면 또다시 가난해지라는 얘기냐”라며 울먹였다.
구둣방 주인들은 일터를 잃고 나면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실업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십 년간 구두닦이만 해왔기에 재취업이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마포구는 “2011년 이들에게 재산이 2억 원을 초과했다는 걸 통보했다”며 “4년 동안 다른 직업을 구할 준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서울시나 각 자치구는 이들이 수십 년간 해온 일을 버리고 새로운 직업을 찾는 게 어렵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마포구 관계자는 “일자리 취업센터 등에 알아보려고 했지만 구두닦이를 오래 해온 사람에게 맞는 일자리를 마련해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역시 “구두 닦는 일자리를 잃은 분을 위한 대책은 특별히 마련된 게 없다”고 밝혔다.
현재 서울시에는 구둣방 1136곳, 가판대 1061곳을 포함해 총 2197개의 보도상 영업시설물이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전히 적지 않은 수”라며 “조례인 만큼 재산 2억 원 기준을 넘는 시설물이 생기면 이전과 똑같이 적용해 철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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