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1000원짜리 ‘행복 밥상’은 계속 차려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4일 03시 00분


광주 대인시장 ‘해뜨는 식당’ 운영, 故 김선자 할머니 추모 메모 물결
상인들“소외계층 위해 계속 영업”

광주 동구 대인시장 해뜨는 식당 앞 추모 벽에 고 김선자 할머니를 기리는 노란 메모지들이 붙어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광주 동구 대인시장 해뜨는 식당 앞 추모 벽에 고 김선자 할머니를 기리는 노란 메모지들이 붙어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마음과 행동이 제게 큰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헌신이라는 두 글자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신 할머니이셨습니다.”

23일 광주 동구 대인시장 ‘해뜨는 식당’ 앞 나무 벽에는 고 김선자 할머니를 추모하는 내용이 적힌 노란 메모지들이 물결을 이뤘다. 추모 벽은 대인시장 예술가들이 김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김 할머니는 2010년 8월 대인시장에 해뜨는 식당을 열었다. 자신도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3가지 반찬, 된장국이 나오는 정성스러운 백반을 1000원에 팔았다. 백반은 시장을 찾은 시골 노인, 홀몸노인, 장애인 등에게 행복밥상이었다.

김 할머니가 행복밥상을 차린 이유는 소박했다. 보험회사 소장 등을 지냈던 그는 외환위기 때 사기를 당해 빈털터리가 됐다. 고인은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이웃들이 줬던 작은 도움을 늘 기억했다. 김 할머니는 따뜻했던 배려를 힘든 이웃들에게 갚고 싶어 해뜨는 식당을 열었다.

처음에는 한 달에 200만 원 넘게 적자를 봤다. 김 할머니의 아들 2명이 매월 100만∼200만 원을 보탰지만 적자는 늘어갔다. 사연이 알려지면서 쌀, 반찬을 후원하는 손길이 이어졌다. 적자가 다소 줄긴 했지만 혼자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힘겹게 식당을 꾸려가던 김 할머니는 2012년 5월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아 식당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대인시장 상인들은 이듬해 5월 김 할머니를 대신해 식당 문을 다시 열었다. 김 할머니는 암 투병을 하면서도 매일 전남 화순 집에서 식당을 찾아와 밥상 차리는 것을 도왔다. 할머니는 지난해 5월부터 지인 김모 씨(57·여)를 해뜨는 식당에서 일하도록 하고 매달 월급을 챙겨줬다. 해뜨는 식당 임대 명의자는 여전히 김 할머니였다. 김 할머니는 18일 숨을 거두면서 “식당 운영이 계속되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김 할머니는 20일 화장을 거쳐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

대인시장 상인들은 김 할머니 뜻을 이어받아 해뜨는 식당을 운영하기로 했다. 후원자들의 작은 정성도 식당 운영에 보탬이 되고 있다. 경기도에 사는 김모 씨(여)는 매달 40, 60kg들이 쌀을 보내준다. 상인 백정자 씨(54·여)는 “김 씨가 보낸 쌀 포대는 수작업으로 만들었고 쌀 품질이 약간씩 다른 것을 보면 여러 사람이 쌀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해뜨는 식당 후원 품목은 쌀을 비롯해 배추, 마늘, 생선까지 다양하다. 후원금은 고교생들이 모아 낸 8000원부터 5만 원까지 대부분 소액이었다. 홍정희 상인회장(69·여)은 “상인들이 주축이 되고 후원자들의 힘을 보태 소외계층에게 해뜨는 식당 행복밥상을 차려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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