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명 아이들 돌보느라 화장실 갈 틈 없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4일 03시 00분


토하면 닦아주고… 달래가며 밥 먹이고… 어린이집 하루는 ‘전쟁터’
기자가 직접 보육교사 해보니

18일 점심시간이 막 끝난 서울 동작구 구립상도어린이집의 교실. 일일 보육교사 체험에 나선 김수연 기자가 아이들이 먹다 흘린 
음식물을 물티슈로 닦아내고 있다. 교사들은 “급식시간에 아이들을 통제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18일 점심시간이 막 끝난 서울 동작구 구립상도어린이집의 교실. 일일 보육교사 체험에 나선 김수연 기자가 아이들이 먹다 흘린 음식물을 물티슈로 닦아내고 있다. 교사들은 “급식시간에 아이들을 통제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지금부터 두세 시간이 가장 힘든 시간이에요. 정신 바짝 차리고 아이들을 살펴보지 않으면 크고 작은 사고가 계속 일어날 겁니다.”

18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구 구립상도어린이집 6세 아동반에서 일일 보육교사 체험을 하던 기자에게 보육교사 이지은 씨는 “야외활동과 식사시간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계속 되는 ‘작은 전쟁터’”라고 강조했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기자는 ‘아이 돌보기에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20명의 아이들은 야외활동을 위해 어린이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실내에 있을 때보다 훨씬 활동적으로 바뀌었다. 말 그대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20개의 럭비공’ 같았다.

더구나 교실처럼 ‘제한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교사들이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계속 파악하는 건 힘들었다. 술래잡기놀이를 하다 넘어지는 아이, 뛰어놀다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토하는 아이 등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토하는 아이의 입을 닦아주고 물을 먹여 달래는데 일부 아이는 미끄럼틀에서 거꾸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 교사는 “조심해” “그러면 안 돼”라고 외치며 다니느라 목소리가 갈라졌다. 보육교사 체험에 함께 참여한 송영진 보건복지부 사무관도 “이제 겨우 2시간 지났는데 마치 하루가 지나간 것 같다”며 “몸이 10개라도 부족할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야외활동 뒤 이어진 점심식사 시간도 또 하나의 작은 전쟁터였다. 밥을 먹지 않으려는 아이를 달래는 건 그나마 쉬운 편이었다.

교사 이 씨는 밥을 먹다 말고 식판을 들고 자리를 옮겼다. 밥을 먹지 않고 수저만 뱅뱅 돌리는 아이의 밥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기자가 지켜본 이 교사의 실제 식사시간은 약 5분. 나머지 시간은 아이들을 살피느라 식판에 눈을 둘 수가 없다. “1등으로 밥 먹을 거예요” 하며 자기 주먹 정도 되는 밥 덩어리를 입에 넣으려는 아이들을 제지하는 것도 교사의 몫. 이 씨는 아이들 양치 지도까지 마친 뒤에야 양치를 겨우 할 수 있었다.

상도어린이집은 원생이 200명 이상 되는 대형 국공립어린이집. 민간 어린이집에 비해 시설도 좋고, 보조교사도 세 학급당 한 명꼴로 배치돼 보육교사의 근무여건이 그래도 괜찮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실제로 이 씨는 “그래도 오늘은 보조교사(기자)가 있어 한결 수월한 편”이라고 수차례 말했다.

어린이집 일과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오후 5시경부터 보육교사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화장실을 가기 시작했다. 보육교사들 사이에서는 평소 화장실을 편하게 갈 수 없기 때문에 ‘생리 때가 가장 힘들다’는 푸념도 있다고 한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이달 초 열린 임시국회 때 어린이집 보조교사 배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담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했지만 일부 의원의 반대로 부결됐다. 개정안에 담긴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 조치로 보육교사 인권침해 논란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당수 교사와 학부모들은 보조교사 배치 의무화, 교사 자격 기준 강화, 현직 교사 인성교육 같은 개선책이 마련될 기회가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이현숙 상도어린이집 원장은 “CCTV 설치 외에도 교사 인성교육이나 보조교사 배치는 현장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며 “교사들의 근무환경이 개선돼 교과연구와 수업 준비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면 보육 서비스의 질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어린이집#전쟁터#보육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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