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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주제는 ‘정직’]<54>약자 위한 배려, 무임승차 그만
서울 강남에 사는 직장인 김모 씨(36)는 경기 수원에 있는 회사 앞까지 한 번에 가는 대중교통이 없어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매일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다 보니 지하철로 다니는 게 가능했던 이전 직장보다 기름값이 크게 늘었다.
결국 김 씨는 ‘생활비 절감 전략’을 세웠다. 몇 해 전 척추수술을 받아 장애등급 6급을 받은 친척 명의로 액화석유가스(LPG) 승용차를 구입한 뒤 자신이 사용한 것이다. 장애인들에게는 휘발유보다 저렴한 LPG 승용차를 영업용이 아닌 자가용으로도 구입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는 것을 악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최근 사회생활을 하다 알게 된 미국 교포 출신 친구로부터 부끄러운 지적을 들었다. 친구와 차를 타고 가다 연료가 떨어져 LPG 충전소에 들렀는데 친구가 “한국에선 택시 같은 영업용 승용차들만 LPG 차량인 것 아니냐”고 물은 것.
김 씨는 별생각 없이 자신의 생활비 줄이기 전략을 설명했는데 친구는 놀라며 “다른 혜택도 아니고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위한 혜택에 일반인이 무임승차하는 행위는 미국에선 단순한 얌체 짓이 아니라 양심을 완전히 버리는 일로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처음에는 친구가 ‘오버’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장애가 있는 친척까지 이용해 가며 이득을 챙기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설명한 내 모습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장애인 배려 차원에서 제공되는 각종 혜택을 장애가 없는 장애인의 친인척 혹은 지인들이 대신 누리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장애인용 통행료 감면 카드를 장애인이 차에 타고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용하다 적발된 경우는 지난해에만 5만4187건. 2012년과 2013년에도 각각 7만8728건과 7만657건에 이르렀다.
걷는 게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해 공공장소에 마련된 장애인 전용 주차 공간에 차를 세울 수 있는 ‘장애인 주차 스티커’를 악용하는 사례도 많다. 이 스티커가 붙어 있어도 장애인 전용 주차 공간에는 장애인이 차에 타고 있을 때만 주차가 가능하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장애인이 타고 있지 않을 때도 장애인 전용 주차 공간에 차를 세운다. 장애인 주차 스티커가 붙어 있는 차에 실제 장애인이 타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단속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주차장 관리 아르바이트를 했던 조모 씨(23)는 “장애인 주차 스티커가 붙어 있는 차에서 실제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이 내리는 걸 본 적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혜택 무임승차에 대한 엄격한 조치와 함께 장애인 스스로도 권리 보호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성규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선진국일수록 장애인에 대한 혜택 제공에 적극적이지만 동시에 이를 악용하는 경우에 대해선 엄격한 조치를 취하고, 장애인들에게도 주어진 혜택을 주변 사람들이 무임승차할 때의 부작용을 꼼꼼히 알리는 문화가 잘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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