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행산업 이용자 현금 대신 전자카드 의무화 추진… 불법 도박시장 되레 키울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7일 03시 00분


프로농구 스타 A 씨는 지난해 말 협박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불법 도박과 관련된) 증거가 있으니 2000만 원을 부치라’는 내용이었다. 결백을 주장했던 A 씨는 한국농구연맹과 국민체육진흥공단을 통해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최근 경찰은 동료, 후배 선수들에게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한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돈을 뜯어낸 전현직 농구·배구 선수를 구속했다. 이처럼 불법 도박의 그림자는 도처에 드리워져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무총리실 직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전자카드 제도가 불법 도박 시장을 오히려 키울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며 제도 도입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감위는 지난달 23일 전체회의를 열고 ‘2018년 전자카드 전면시행(안) 및 올해 전자카드 확대시행 권고안’을 확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관련 업계의 반발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며 30일 재논의하기로 했다.

전자카드제는 경주류(경마 경륜 경정), 체육진흥투표권(스포츠토토), 내국인 카지노 등 사행산업 이용자에 대해 현금 사용을 전면 금지시키고, 실질적인 실명제인 전자카드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1인당 베팅 한도액을 초과하면 사행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인데 오히려 합법적인 이용자들까지 불법 도박 시장으로 이탈시키는 풍선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권 침해 시비를 일으키고 있는 지정맥(손가락 끝부분 정맥)을 활용한 전자카드 등록 방식과 신분 노출에 대한 거부감이 커져 이용자들을 접근이 쉽고 배당률이 높은 불법 도박 시장으로 내몰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행정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스포츠토토 이용자 가운데 38.4%는 전자카드가 도입되면 불법 사이트를 이용하겠다고 답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6일 생체정보가 담긴 전자카드 제도가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다.

사감위 발표에 따르면 2008년 53조7000억 원이던 국내 불법 도박 시장 규모는 2012년 95조6000억 원까지 커졌다.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2013년 순매출액 기준으로 합법 사행산업의 규모는 8조4000억 원으로 불법 도박의 10분 1 수준이다. 과도한 규제도 불법 도박 양산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여론조사기관 포커스컴퍼니가 최근 실시한 사행산업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전자카드 제도가 불법 도박을 근절하는 근본적인 대책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51%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스포츠토토를 주관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 관계자는 “불법 시장의 연간 탈루액은 28조7000억 원에 달한다. 불법 도박만 제도권으로 흡수해도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자카드가 도입되면 마사회와 스포츠토토의 수익이 불가피하게 급감해 이들 기관의 각종 지원 사업 규모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마사회는 매년 축산발전기금 등 1조7000억 원 정도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스포츠토토 수익금 등으로 조성된 체육진흥기금은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유망주 발굴과 아마추어 스포츠 지원 등에 사용되고 있다. 마사회 관계자는 “건전한 레저 활동으로 즐기려는 대다수 소액 이용자에게 불편을 끼치는 정책은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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