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독자에게서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여자친구가 봄나들이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다. 그런데 나는 사람 많은 곳이 싫다. 구경꾼 적고, 조용한 서울의 벚꽃 핫 플레이스를 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벚꽃 좀 즐길 줄 아는 이들은 앞다퉈 “멀리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경남 창원시(옛 진해) 군항제나 서울 여의도 벚꽃축제는 찾는 이가 너무 많아 마음 놓고 제대로 꽃을 즐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23일 기자는 서울 서대문구 ‘안산’(해발 259.9m)을 찾았다. 아직 쌀쌀한 탓에 꽃은 없었지만(서울의 벚꽃 개화 예정일은 다음 달 9일) 산속 벚나무들은 저마다 꽃눈을 틔우며 봄맞이 준비에 한창이었다.
말안장을 닮았다고 이름 붙여진 안산(鞍山)은 크지 않지만 벚나무가 3000그루나 있다. 벚나무는 주로 산의 서쪽 경사면(연희동 방향)에서 자라고 있는데 40∼50년 전 사람들이 조림한 왕벚나무, 수양벚나무와 자연적으로 자라난 산벚나무가 다양하게 어우러져 있다.
안산에서 가장 큰 벚나무 군락은 연희동과 맞닿은 ‘연희 숲속쉼터’에서 바로 접할 수 있다. 이곳은 벚나무뿐만 아니라 향기로운 허브식물도 있어 봄에 다양한 식물을 접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또 벚꽃 개화가 시작되면 하루 1차례 이상 문화공연도 펼쳐져 볼거리도 다양하다.
안산 벚꽃의 진수를 보려면 해발 약 150m 경사면에 펼쳐진 ‘산중 벚꽃길’에 올라가야 한다. 이날 기자와 벚꽃길 동행에 나선 김종철 서대문구 자연생태팀장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진해, 여의도 벚꽃길과 달리 안산 벚꽃은 길을 따라 자연적으로 이어진 게 특징이다”며 “당장 화려함은 덜하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끼기엔 훨씬 좋다”고 강조했다. 벚꽃만 보는 게 지겨워질 즈음 하늘로 솟은 ‘메타세쿼이아 숲’이 등장해 홀로 사색에 빠져볼 수 있다는 것도 인상 깊다.
연희 숲속쉼터에서 시작된 안산 벚꽃길은 산 남쪽 ‘무악정’ 부근에서 끝난다. 이후 울창한 참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노인, 장애인이 쉽게 다닐 수 있도록 ‘무(無)장애길’(계단과 급경사가 없는 길)로 조성돼 있다. 이 길을 따라 약 20분만 내려오면 일제 강점기 선조들의 슬픈 얼이 서린 ‘서대문독립공원’에 갈 수 있다.
벚꽃길 나들이가 끝나도 데이트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다. 독립문 옆 영천시장에서 꽈배기, 떡볶이 등 이름난 서민 먹을거리와 막걸리를 함께 하면 저절로 ‘신선놀음’에 빠져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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