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가게 주인은 양심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1일 03시 00분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3월의 주제는 ‘정직’]<58>전남 장성군 신촌마을의 자부심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신촌마을에 있는 ‘무인 가게’는 마을의 정직과 신뢰를 되살리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진열장에 적힌 가격을 보고 돈통에 돈을 넣으면 된다. 장성=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신촌마을에 있는 ‘무인 가게’는 마을의 정직과 신뢰를 되살리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진열장에 적힌 가격을 보고 돈통에 돈을 넣으면 된다. 장성=임현석 기자 lhs@donga.com
“믿음이 정직을 넘어 나눔까지 낳았습니다.”

2005년 5월, 전남 장성군 북하면 신촌마을에 일명 ‘무인가게’가 들어설 때만 해도 주민들은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무인가게란 주인 없이 가격표를 붙여놓으면 그 가격을 놓고 물건을 가져가는 가게. 130여 명이 사는 신촌마을에 하나 남은 구판장마저 손님이 줄어 문을 닫은 상태라 주민들은 생필품을 구하려면 4km 떨어진 읍내까지 가야만 했다. 무인가게는 그해 이장이 된 박충렬 씨(56)가 “가게를 운영할 사람이 없다면 ‘주인 없는 가게’라도 만들어 보자”고 제안해 만들어졌다.

물론 초기에 마을주민들은 걱정이 앞섰다. ‘도둑 들어 거덜 나기 십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박 씨는 “한번 믿어보자”며 마을회관에 가게를 차렸다. 박 씨는 사재 300만 원을 들여 광주의 대형마트에서 과자와 라면, 세제, 술 등을 가져와 채웠다. 가게 운영비 명목으로 10%의 이윤만 남겼다.

주민 정한도 씨(83)는 “처음에는 아무도 없는 가게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왠지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서 나오다가 이웃을 만나면 물건을 흔들며 “나 값 치렀네”라고 말하는 것이 인사처럼 됐을 정도. 그 말을 하지 않으면 왠지 그냥 갖고 나온 것으로 오해받을까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무인가게는 당초 우려와 달리 두 달 후인 7월 10만 원의 흑자를 냈다. 생각보다 정직하게 운영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자 가게 운영에는 더욱 탄력이 붙었다. 물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때 도둑이 들어 돈통을 부수고 돈을 가져가고, 담배자판기를 해체해 담배와 현금을 전부 가져가는 일도 있었다. 2006년에는 확인된 피해액만 300만 원이 넘었다.

박 씨는 상실감에 가게를 접으려고도 했지만 이번에는 주민들이 격려했다. “외지인이나 철모르는 중고교생이 그랬을 것”이라며 “주민들이 양심을 지키며 정직하게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줄수록 도둑은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돈통에 손을 대다가 걸린 외지 고교생에게 한 마을주민은 “차비가 필요하다면 먼저 어른들에게 말하라”라면서 오히려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쥐여주기도 했다.

어려움을 극복한 지금 이 가게는 초기 10m²(약 3평)에서 33m²(약 10평)로 커졌다. 처음에는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지만 이제는 이마저도 떼었다. 지방 곳곳에 농산물 무인판매대는 CCTV 없이 운영되지만 일부 골프장의 경우 무인매대 주변에 CCTV를 설치해 감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장성 신촌마을의 CCTV 철거는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게 입구에 걸린 ‘우리 마을 가게는 무인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란 팻말이 마을주민들의 믿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곳을 들르는 다른 사람들도 믿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믿음이 이룩한 성과는 가게에서 나온 이득으로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쌀과 약간의 용돈을 지원해주는 데까지 커졌다. 주민 김성균 씨(75)는 “믿음이 정직을 낳고, 정직은 소득을 낳고, 소득은 나눔을 낳게 했다”며 “우리들의 작은 노력으로도 얼마든지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장성=임현석 기자 lhs@donga.com
#무인가게#양심#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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