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한국 호랑이는 죽어서도 가치를 인정받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일 03시 00분


목포 유달초교 보관 호랑이 박제… 영광군-목포자연사박물관 등
“이관 도와달라” 물밑경쟁 치열

1908년 한반도에서 잡혀 박제된 한국 호랑이. 유달초교 제공
1908년 한반도에서 잡혀 박제된 한국 호랑이. 유달초교 제공
전남 목포 유달초교에는 107년 전 한반도에서 잡힌 박제 호랑이가 있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이 호랑이를 자랑스러워하고 누구나 이와 관련된 추억을 갖고 있다.

학교 측은 지난달 25일부터 학생, 학부모, 교직원, 졸업생을 대상으로 호랑이 박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설문조사는 전남 영광군이 조만간 문을 열 예정인 산림박물관에 이 학교 호랑이 박제를 옮기고 싶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학교 측은 3일 운영위원회를 열고 공식 입장을 정리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학교 설문조사 에 응한 답변자 대부분은 “호랑이 박제를 절대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응답자 중 상당수는 “지금까지 잘 관리되고 있는데 훼손 운운하는 것은 박제를 가져가기 위해 억지주장을 하는 것 아니냐”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한 졸업생은 “호랑이 박제는 학교의 상징물로 졸업생 모두의 관심사”라며 “지방자치단체 등의 협조를 받아 체계적인 보전·관리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유달초교 박제 호랑이는 1908년 2월 전남 영광군 불갑면 불갑사 인근에 농부가 파 놓은 함정에 빠져 아사했다. 호랑이는 수컷으로 열 살 안팎이며 몸통 길이 160cm, 신장 95cm, 몸무게 180kg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국에 살던 일본인 하라구치 쇼지로(原口庄次郞) 씨가 죽은 호랑이를 사들여 박제로 만든 뒤 이 학교에 기증했다.

이 박제는 현재 남한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유일한 생물학적 증거다. 국립생물자원관은 박제 호랑이의 유전적 성격을 분석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이 호랑이가 북한이나 시베리아에 사는 것과 같은 종이지만 지형적 여건으로 덩치, 무늬, 체중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호랑이의 유전자는 남한 호랑이의 유전자 표본이 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서울대 수의대에서 호랑이 유전자 지도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여러 기관 및 단체가 이 호랑이 박제를 가져가 전시 또는 연구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목포자연사박물관은 2002년부터 호랑이 박제를 이관받기 위해 노력했고, 국립생물자원관도 2010년 박제 이전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호랑이가 잡힌 영광군도 박제를 가져가기 위해 뛰고 있다. 최근에는 불갑사 인근에 곧 문을 열게 되는 산림박물관으로 가져가기 위해 ‘호랑이 박제 고향 귀환 추진운동’을 벌이고 있다. 영광군 관계자는 “3일 유달초교 운영위원회에 참석해 호랑이를 고향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호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박제 호랑이에서 유전자(DNA)를 채취해 남한 호랑이를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또 다른 그룹은 박제가 화학약품으로 완벽하게 처리돼 복원에 필요한 수준의 유전자를 얻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유전자를 채취해 복원하는 것보다 박제의 체계적인 보전 및 관리가 더 시급하다고 분석했다.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은 “2009년 박제에서 호랑이 유전자를 채취할 때도 완벽한 약품처리 탓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야생에서 산 채로 포획된 것이 아니라면 박제 호랑이에서 유전자를 채취해 복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연구관은 또 “북한과 시베리아 호랑이 보호사업에도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만큼 남북교류 활성화 등을 위해 북한 호랑이 보호사업에 지원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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